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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자 출신 중 처음으로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이 된 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15일 별세했다.

 

한국에 미국식 마케팅을 도입하고 국내 유통근대화를 이끌며 30년간 고려대학교에서 후임양성에 힘썼다.

 

김 회장과 고려대의 인연은 1954년부터 시작된다. 어린 시절 문학도의 길을 꿈꾸던 김 회장은 중학교 4학년이던 당시 6·25전쟁이 발발하며 꿈을 접게 된다.

 

전쟁 상황에서 국민들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김 회장은 경제 재건에 힘쓰겠다는 생각으로 경영학을 택했다. 이후 고려대 상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하며 경영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미국 뉴욕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거친 김 회장은 한국에서 [현대유통기구]와 [한국의 물류산업] 저서를 펴낸다. 한국에 미국식 마케팅과 물류화를 처음 도입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유통근대화 추진위원회'의 핵심멤버로 한국 최초의 슈퍼마켓과 할인판매점 편의점, 쇼핑몰 및 대규모 물류단지 등의 개설과 소비자 신용카드 제도 도입을 이끄는 등 국내 물류 혁신과 유통 현대화에 기여했다. 2004년에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고려대에서는 1965년부터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한다. 당시 고대에서도 영어로 마케팅을 가르치며 글로벌 인재가 되라고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환으로 그는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을 창립하는데 일조해 1대, 2대 국제대학원장을 역임했다. 김 회장은 1999년 교수직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2005년부터 석좌교수로 복귀하며 후임 양성에 기여했다.

 

한국경영학회장, 한국마케팅학회장, 한국상품학회장, 한국로지스틱스학회장, 대한민국학술원 부회장을 지냈다. 2018년 3월 제37대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경영학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에 이름을 올렸다.

 

고인은 《현대유통기구론》 《소비자신용제도론》 《한국의 물류산업》 《국제화시대의 경영전략》 등의 책을 펴냈다. 고인은 12월15일 오후 6시 58분 별세했다. 향년 87세.

 

유족으로는 부인 오상은씨, 아들 김종윤씨(기아차 상무), 며느리 박지영씨, 손녀 김세정·김윤정·김민정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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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하는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작년 9월17일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열린 제65회 대한민국학술원상 시상식에서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마 12월15일 별세하기 전 가장 최근의 행적일 것이다. 고인은 뇌진탕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대한민국학술원(大韓民國學術院)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어떤 기관인가?

 

학술 발전에 현저한 공이 있는 학자를 우대 및 지원하고 학술연구와 학술진흥에 관한 정책 자문 및 학술 교류 등을 통해 학술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국가 기관이다.

대한민국학술원법에 의거하여 총회에서 선출하는 학술원 회장 및 부회장은 임기 2년으로 1회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으며 학술원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대한민국 교육부 소속으로 학술원사무국장(부이사관 = 3급)이 지휘하는 학술원사무국을 두고 있다. 본부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4동에 있다.

1952년 제정된 문화보호법에 따라 설치되었고, 1954년에 개원하였다. 분야는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으로 크게 나뉘며, 각 분야는 여러 분과로 구성된다. 학술원 회원의 임기는 선출 이후 평생이다.  1.gif

 

 

김동기 교수의 시비(詩碑) 이야기

 

김동기 교수는 재미 작가 김수영 목사(언니)와 김영교 시인(동생)의 오빠이기도 하다.

김수영 목사는 다음과 같이 오빠 김동기 교수를 회고(回顧) 했다.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안동(安東)은 낙동강을 끼고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퇴계 이황 선생이 조선 시대에 도산서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한 대 선비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한 류성룡은 조선 중기의 영의정으로 명성을 날렸다. 서애 류성룡선생의 고향인 하회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다녀간 유명한 곳이다.

 

김동기 교수는 이곳 선비의 고장에서 태어나 선조들의 얼을 물려받아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문장력이 뛰어나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교내의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휩쓸었다. 이 청소년은 청운의 꿈을 안고 학업에 매진하여 초. 중. 고교를 모두 고향인 안동에서 마쳤다. 같은 나이 또래의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비범한 데가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이나 동급생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청소년으로 모든 사람의 선망 대상이었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하루아침에 이 청소년은 꿈이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보였다.

전쟁 중 아버님과 누님이 돌아가시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아버지 대신 집안의 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돌봐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공부만 하던 나이에 갑자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며 직장을 구해 보아도 나이가 미성년자라 아무도 선뜻 일자리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낙심된 이 청소년은 일자리를 찾아 남으로 내려가다가 드디어 부산까지 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얻은 일자리는 미군부대 행정보조원 자리로 출퇴근 체크와 급료 계산 업무를 맡았다.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을 쌓은 뒤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원주에 주둔 중인 미군 부대의 영어통역으로 일하였다. 

 

 일 년 뒤 다시 복교하여 삼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다. 바로 이 소년이 작은 오라버니였다. 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오라버니는 많은 시와 논문을 쓰셨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1950 년 후 중. 고생들의 종합잡지로 널리 애독되었던 월간지 '학원'의 제 일회 학원 문학상 시 부분 최우수상 작품으로 오라버니의 시 '기(旗)'가 1954년에 선정되었다. 당시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바 있다. 

 

 2003 년 10월 5일 안동고등학교 교정에는 이색적인 시비 제막식이 있었다.

개교 50주년을 맞이하여 동창회에서 기념사업의 하나로 모교를 빛내고 국가사회에 크게 기여한 동문 중 두 사람을 선정하여 동상이나 비석을 세우기로 하였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오라버니였다. 동창회에서는 시비(詩碑) 건립으로 그의 공적을 기리기로 했다. 

 

오라버니는 15권의 저서와 백여 편의 연구논문을 남겼다. 2010년 희수를 맞이하셔서 시문집 '청천에 펄럭이는 기처럼'을 출간하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찌 감회가 깊지 않았겠는가.

 

시인으로 등단 후 시인의 길을 접으시고 전쟁 후 우리나라의 낙후된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경영학을 전공하셨다. 미국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과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하신 후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셨다.

경영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으시고 그 후 각계로부터 많은 공로상을 받으셨다.

 

1985 년 미국의 Marquis 사에서 발간한 'Who's who in the world'(세계인명사전) 가 5 번째 출판되었을 때 오라버니의 업적이 실려 있었다.

 

나는 이곳 미국 도서관을 찾아가 오라버니의 이야기가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하여 책을 찾아 내용을 읽어 보았다. 오라버니의 경영학에 대한 업적과 영향과 공로만 나열해 놓았지 오라버니의 청소년 시절과 고생하신 이야기는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오라버니 자신도 본인이 고생한 이야기를 시문집이나 다른 어떤 책에도 언급하지 않으셨다.

 

내가 처음으로 오라버니의 고생하셨던 과거를 들추어 내어 외람되게 생각되지만, 한편으로 뿌듯한 마음으로 그 고생을 참고 견디며 이겨내신 오라버니가 한없이 존경스러워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오라버니께서 어린나이에 원주에서 미군부대 통역으로 일하셨기에 고려대 최초로 영어로 강의하실 수 있는 교수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평생을 암송하며 좋아했던 오라버니의 시 '기(旗)' 를 이곳에 올려본다.  1.gif

 

 

기(旗) 

 

너를 볼 때마다 

파란 연기처럼 

오르고 싶은 마음 

 

나는 너의 호흡이 

너의 세계가 못 견디게 

그리워서 그만 네가 되어본다

 

너는 나를 키워준 

또 하나의 어머니 

 

비록 기(旗)는 바람에 찢기고 

눈보라에 헐리었어도 

 

여기 내가 기(旗)를 올리면

기(旗)는 또 나를 올린다.  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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