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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펜데믹으로 사재기(Panic Buying)가 극성이다.

목요일 아침이다. 코스코(Costco)가 착한 일을 한다는 소식이다. 시니어들에게 아침 일찍 우선 구매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8시부터.

 

아침 7시에 출발했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라 하브라](La Habra)에 있는 코스코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긴 줄이었다.(The line is pretty long 줄 끝에 서있는 분에게 Are you in line? (줄 서고 계십니까?) 인사말을 건넸다.

 

날씨가 차갑다. 혹 이런 상황에서 새치기 하는 사람은 없을까?  약 그렇다면 Don't cut in line, please.(치기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야지. 다행이 새치기 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둘러 새벽일찍 줄을 섰다가 고작 화장지(Toilet Paper) 한 팩을 사들고 돌아 왔다.

분명 [얼마나 오래 줄을 섰냐]고 물어 볼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두 시간이었다... I had been standing in line for two hours. 혹 영국계 미국사람이라면 I had been queueing(큐잉) for two hours 라고 말을 해야한다....

 

미국 사람들은 줄서기에 익숙하다. 나도 길들여져서 줄을 잘 서는 편이다. 아니 현대는 줄서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이 새로 나온다고하면 밤새도록 텐트를 치고 베스트 바이(BestBuy)앞에 줄서있는 젊은 이들을 보았다. 유명한 영화가 들어와도 긴 줄을 선다. 등교시간 스쿨버스 앞에도 긴줄이 있다. 특히 DMV(차량국) 앞에 긴 줄서기는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그런데 좀 유명하다는 식당은 줄서기 보다 번호표를 나눠준다.  분명 줄서기보다 더 발전되고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다. 이렇게 현대인들은 줄서기에 길들여지고 있다. 문명사회일수록 줄서기에 더 잘 길들여져있다.

 

줄서기를 하고 돌아 온 내 머리 속을 스치는 섬득한 생각이 있었다. 

요한계시록 13장 16-18절의 말씀이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사고 파는 일)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라/

 

중남미는 오래 전부터 좌경화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베네주엘라는 물가가 수만배 뛰었다. 국민들이 먹고 살기가 버겁다. 모든 것을 무상으로 다스려서 국민 스스로가 자력으로 생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배급을 받는다. 줄을 서야 한다.  줄 서기에 익숙해졌다. 인권을 외치고 싶어도 그러다가는 배급이 끊겨 목구멍에 풀칠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마치 마두로(베네주엘라 대통령)가 먹여주는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줄서기]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함으로써 소련 몰락을 예고한 소설이 바로 블라디미르 소로킨(Vladimir Sorokin)이 1985년 발표한 [줄]이다.

소설에서 소로킨은 노예적 줄서기의 비극을 1896년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 때 모스크바 근교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와 연결했다.

황제가 내리는 설탕, 과자, 맥주 등의 선물을 받으려고 몰려들어 줄 선 민중은 하사품이 소진되었다는 소문에 동요하다가 2000명 가까운 사람이 압사했다. 정부가 이에 대해 진정성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분노한 군중이 황제의 무능과 무감각을 규탄하면서 집단적 심판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것이 결국 혁명의 외침으로 이어졌다.

 

[일루미나티]는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외친다. 심지어 전염병을 돌게하여서라도 [펜데믹]으로 몇십억 정도로 세계인구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줄서서 배급을 받아야 할 만큼 사회적 불안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인류는 줄서기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화장지 한 팩을 사려고 두 시간이나 줄서고 돌아 온 나는 분명 무엇인가 [줄서기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다.  마귀에게 줄을 서면 배고픔도 영화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유혹이었다.  주님은 물리치셨다.

 

그런데 왜 오늘 이 시간 종말의 때에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해야겠기에 적그리스도의 대열에 줄 서있는 초라한 내 모습이 연상(聯想)되는 것일까?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행여나 짐승의 표를 받기 위해 줄서는 바로 그 줄서기에 익숙해 지는 연습이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아니다. 치를 떨면서 나는 성령님께서 나의 심령에 불을 질러 주시라고 오늘 아침 기도드렸다.  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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