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터 부인의 편지

최 숙희

 

집만 줄이고 짐은 그대로 다 가져왔기에 이사 후 짐정리가 만만치 않다. 직장 때문에 뉴욕에 살고 있는 딸아이 방을 정리하다가 옛날 편지를 모아둔 상자를 보았다. 손 편지가 귀한 세상이니 나중에 추억이 될 듯하여 버리지 못하고 새집까지 가져온 것이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된 1999년에 받은 몇 통의 편지가 있었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사귄 친구 쥴리아의 미국인 엄마 커스터 부인이 보낸 것이다. “러시아에서 왔대.” 하기에 미국이 다민족 국가라 그럴 수도 있겠지, 했다. “그런데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래.” 입양가족을 실지로 본 것이 처음이었다.

 

아주 오래전 학교 자원봉사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여럿이라 항상 바쁘려니 했는데, 딸의 영어공부를 도우려 펜팔을 자청했다니 놀랍고도 고맙다. 꽃무늬가 화사한 편지지에 수려한 손 글씨가 감동이다. 영어가 서툰 아이를 위해 그림까지 곁들인 솜씨는 수준급이다.

 

보르네오 섬 여행 후 편지에는 오랑우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원주민 언어로 오랑사람’, ‘우탄정글을 뜻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팜유생산을 위해 오랑우탄의 서식지인 열대우림을 마구잡이로 파괴하여 오랑우탄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사연은 흥미롭고도 안타까웠다.

 

오리건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마운트 후드(3429미터)를 다녀온 등산 후기도 있었다. 빙하로 덮인 산을 크레바스(빙하가 녹아 갈라진 틈)에 빠지지 않게 남편과 로프로 몸을 묶고 등산용 얼음도끼와 크렘폰으로 무장하고 등산한 이야기는 그림과 함께 자세히 묘사되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해가 떠서 눈이 녹으면 바위가 굴러 위험하므로 밤 10시에 출발하여 눈이 녹기 전에 하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장장 13시간의 고된 산행을 마친 것은 하이킹을 하는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커스터 부인은 봉투에 적힌 주소에 아직 살고 있었다. 그녀를 찾아 감사의 인사를 하고 등산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쥴리아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러시아 유학을 마친 후 미국에 입양된 러시아 고아 친부모 찾기(FAMILYSEEK.ORG)일을 하고 있었다. 이름도 미국과 러시아 두 곳을 나타내는 Julia Sasha로 바꾸고 자기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커스터 부인의 사랑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입양은 돈과 시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정과 가족의 행복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섯 명의 러시아 고아들을 입양하여 책임감과 사랑으로 키우면서, 갓 이민 온 딸아이의 펜팔까지 자청한 커스터 부인의 삶을 보니 지금까지 내 가족밖에 품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 부끄럽고 큰 도전을 받는다.

 

한 알의 대추도 저절로 붉어져 영글지 않는다는 시구절처럼 혼자 힘으로 이룬 것 같아도 다른 이들의 많은 도움으로 우리 가족이 이국땅에서 뿌리내리게 됨을 알게 되었다. 커스터 부인 편지봉투에 붙어있는 노란 스마일 스티커가 나를 향해 웃는다. 나도 따라 웃어 보았다. 그나저나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가져온 짐은 언제 다 정리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