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호 여학생

최 숙희

 

가장 힘들다는 법대 1학년을 마치고 집에 온 아들아이가 눈이 나빠져서 안경 도수를 올려야겠다고 말했다. 방대한 양의 읽기와 쓰기로 눈이 혹사당해 지옥 같은 1학년이라고까지 말한다는데 무사히 1년을 보냈으니 대견하고 감사하다.

 

1년 전 기숙사 입주하던 날 현관에서 마주친 여학생 생각이 났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유난히 까만 머리카락 때문에 하얀 얼굴이 창백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녀린 몸매의 그녀는 자기만큼이나 큰 덩치의 골든리트리버 안내견을 데리고 왔다. 그녀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도 눈이 안보여 지팡이를 짚고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정상적인 아이도 눈이 나빠지는 혹독한 1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음성지원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지만 점자 책 읽느라 지문이 다 지워진 것은 아닐까.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내게 아들은 그녀의 점자 책 읽는 속도가 일반인보다 훨씬 빠르다고 말해 주었다. 매일 저녁 같은 시간이면 안내견을 운동시키는데, 비닐봉지를 꼭 갖고 다니면서 개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그녀를 보는 것은 감동적 이라고 했다. 그녀의 남동생도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데 쥴리어드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있다니 놀랍고도 반가웠다. 이미 2016년에 시청각중복장애인(Deaf-Blind)이 법대를 졸업하였고 미국 장애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도 감동이었다. 인간이 이겨내지 못할 고난은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101호가 그녀의 방이다. 기숙사 건물에 단 하나 있는 공동 부엌이 위치한 1, 건물의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1호실이 그녀에게 배정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이라 눈이 안보이는 그녀를 위한 학교 측의 당연한 배려일 것이다. 기숙사 입주가 다 끝난 저녁때 건물 밖 공터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려 신입생과 재학생, 교수들이 자유롭게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노을 진 하늘아래 신입생의 입학을 축하하는 오색 풍선이 날리고 있었다. 자원봉사 재학생 한 명이 그녀를 돕고 있었는데 안내견과 함께 온 그녀의 모습이 겉돌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기 좋았다. 미국은 어려서부터 장애아들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아 약자에 대한 배려가 당연한 것으로 체득되는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에서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지역주민과 장애학생 학부모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왕복 세 시간씩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허락해 달라며 무릎 꿇고 호소하는 장애학생 학부모의 영상은 가슴 아팠다. 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가 장애아들이 모이면 지역 이미지가 나빠져서 부동산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이라니 기가 막혔다.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현상, 지역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경우이다. 헌법에 보장된 장애인의 교육권을 주장하는 장애학생 학부모와 지역주민 사이에 의견이 팽팽히 평행선을 달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대화와 양보로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

 

물질적 풍요가 아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 사회일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라지는 선진 한국이 빠른 시일에 도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