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구두

최숙희

 

신장을 정리하다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는 구두를 보았다. 여름에 한국의 시부모님이 왔다가 두고 가신 것이다. 수선해 두겠다고 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샌들을 신으신 어머니 발이 시려 보여 백화점에 갔었다. 어머니 구두를 고르고 나니 낡아 보이는 아버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이태리 명품인줄 알았다. 강남에서 제법 큰 규모의 안과를 운영하는 멋쟁이 둘째 아주버님이 사주셨나 여쭈니, 백화점 좌판에서 당신이 연전에 샀다고 하신다. “구두 하나 고르세요, 아버님”, 하니 “얼마나 더 산다고, 새 물건은 자꾸 사서 뭐하게” 하면서도 매장을 둘러보신다. 미제 구두는 밑창이 하나로 되어 있어 굽을 덧댈 수가 없으니 오래 못 신어 틀렸다고 하며 당신 구두를 뒤집어 보여주신다. 이미 여러 차례 밑창을 덧댄 것이 보였다. 이멜다 여사만큼은 아니겠으나 신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 구두와 아들아이 운동화가 생각나서 뜨끔하였다. 불어난 몸매로 옷 살 때는 신중하여 과감히 못 사지만 구두만큼은 자신 있게 구입하곤 했다. 편해 보이는 것은 일할 때, 얌전해 보이는 것은 교회 갈 때 신어야지 하며 말이다. 학교체육으로 트랙과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아들아이는 시즌 별로 새로 쏟아져 나오는 새 운동화를 신어야 기록이 갱신되는 양 한 번만 신은 운동화가 즐비하다. 황해도가 고향인 아버님께서는 이북이 공산화되기 시작하자 가족과 함께 월남하셨다. 자수성가로 사업을 하여 매사에 낭비를 모르는 성품이 구두 한 켤레에서도 드러난다. 형제분들이 평생 한량으로 일정한 직업이 없어 그 식솔들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퇴근길 전철이 붐벼 힘들다는 나의 말을 얼핏 듣고 매일같이 회사 앞에 와서 퇴근시켜주실 때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실감났었다. 한 번도 부엌출입을 않던 친정아버지와는 달리 은퇴 후 시장도 어머니와 함께 다니시고, 장 봐온 것 갈무리도 직접 부엌에 들어와 하시는걸 보곤, '우리 어머니는 복도 많으셔'한 기억이 난다. 수차례 사업과 결혼실패로 해외를 떠돌다 돌아온 장남을 다른 아들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결혼 시키고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주던 모습은 돌아온 탕자를 맞는 하나님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어느 자식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님, 자식들 봉양을 편히 받으실 자격이 충분한데도 요즘 아버님의 일상은 그리 편하질 못하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탓에 가사 도우미도 며칠에 한 번 간신히 부르신다. 올해 미수의 나이로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지만 당뇨와 간경화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병수발을 직접 하느라 고생이시다. 이제껏 자식에 대한 섭섭함을 내색 않던 아버님이 한국에 있는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치셨다. 두 내외 모두 개업의인 아주버님 댁과 대기업 간부인 막내네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번 얼굴보기도 힘들다 하신다. 바쁜 이민생활로 부모님께 무심했던 우리부부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딸 없이 4형제만 두신 시부모님은 모든 며느리들을 시집살이는커녕 딸같이 대해주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도와주셨으나 형제간은 그리 화목하지 못하다. 모두들 자신이 받은 것은 생각 못하고 다른 형제보다 덜 받았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셋째인 나만해도 장남이나 둘째에 비해 부모님께 받은 것이 적다고 마음속으로 불평을 한 적이 있었으니,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베풀 때 두부 모 자르듯이 똑같이 등분하여 나눠 줄 수 있겠는가. 나부터도 이기심만 가득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 형제들이 부모님께 양로입주시설에 가실 것을 권했다 한다. 핵가족으로 단출히 살다 갑자기 연로하신 부모님과 합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시부모님과 지내면서 생활의 리듬이 깨져 불편함이 많았으니까. 평생 자식들을 정성껏 뒷바라지한 부모님 입장에서는 배신감도 들 터이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으신 모양이다. 양로입주시설에 들어가시는 것은 현대판 고려장이 아닌가 생각하실 정도이다.

 

사시는 동네인 분당의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다니시고 아직도 아파트 노인정의 회장 일을 맡아볼 정도로 활달하신 아버님이다. 노인정 할머니들 사이에 인기 만점 회장님이라, 어머니는 "그 꼴 보기 싫어 노인정 출입을 끊었다"할 정도이다. 기대수명 100세를 바라본다는 오늘날 노인문제가 내 앞에 현실로 와있다. 다 정리하고 미국 와서 너희와 살고 싶다고 하시는 말씀에 선뜻 오시라고 못한 것이 죄송하다.

 

고단한 아버님의 생애가 묻어있는 낡은 구두의 먼지를 턴다. 가족을 위해 평생 쉼 없이 바쁘게 일하며 돌아다니느라 뒷굽이 닳아 없어지도록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님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돈다. “내년에 다시 오셔서 신게 구두 두고 가세요. 제가 수선해 놓을게요." 미소를 짓는 아버님에게서 부모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다정한 말 한마디임을 깨달았다. 부디 젊은 우리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철들길, 부디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어리석은 자식이 철들 때까지 건강하게 사시길 바란다고 한 어느 소설가의 말이 생각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