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
설거지를 하느라 싱크대 앞에 서있는 나의 맨발을 로봇청소기가 계속 톡톡 친다. 사이드 브러시를 신나게 돌려 먼지를 긁어모으다 내 발을 장애물로 인식했나 보다. “나야 나, 간지러워, 저리로 가. 저기 바닥에 말라비틀어진 밥알이 보이지 않니, 고추씨가 바로 네 옆에 있는데 그냥 지나치기야.”
아이들이 떠난 집을 혼자 청소하기가 힘들다. 매일 출근하고 하루 쉬는 일요일도 거의 등산을 가기에 차분히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변명을 한다. 그러나 정리정돈과 청소는 나의 아킬레스건이다. 소질도 없고 하기도 싫다. 나이 들며 힘이 달리고, 미룰 수 없는 음식 만들기와 빨래를 하다보면 청소는 항상 뒤로 쳐진다. 그래도 아주 포기할 수는 없어 성능 좋다는 청소기와 스팀청소기를 계속 사들이니 집안에 청소도구만 쌓인다.
환불이 용이한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로봇청소기를 냉큼 집어 왔다. 우주인의 발같이 생긴 사이드 브러시로 구석의 먼지를 모으고 중앙의 브러시가 머리카락 등의 이물질을 쓸어 담아 먼지 통에 모은다.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청소공간을 계산해 최적의 알고리즘을 선택하여 빈틈없이 청소한다는 광고문구가 유혹적이다. 지켜보고 있으면 바로 옆의 이물질도 인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여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청소 후 먼지 통에 모인 한 움큼의 미세먼지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손으로 마룻바닥을 쓸어보아도 사람이 청소기를 돌린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 기특하다. 설명서의 깨알 같은 글씨를 아직 다 읽어보지 못했으니 로봇청소기를 백 프로 이용한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만족스럽다. 걸레질도 야무지게 하는 로봇이 나오면 좋겠다.
아는 분이 아들에게 선물로 받은 스마트 스피커 ‘에코’를 자랑했다. ‘에코’는 음성인식 기술을 가진 기기이다. 탑재된 비서 ‘알렉사’가 원하는 음악을 불과 수 초안에 찾아서 들려주고 뉴스브리핑과 여행지의 날씨와 정보를 주니 편리하단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쇼핑리스트작성, 일정관리, 알람과 타이머기능 등 무궁무진한 역할이 있다. 집안의 여러 전자제품과 연동시키면 움직이지 않고도 작동이 가능하다니 진정한 도우미가 아닌가. 아이들에게 원하는 성탄선물 귀띔을 해야겠다.
산행이 힘에 부쳤는지 온몸이 여기저기 쑤셨다. 미네랄이 풍부한 엡솜솔트(Epsom salt)를 물에 풀어 입욕제로 쓰면 뭉쳤던 근육이 풀린다기에 밤늦게 마켓에 갔다. 기계에 서툰 손님 몇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한 곳을 제외하고 모든 계산대는 셀프였다. 냉동고 옆을 지나가니 내 움직임을 알아차린 센서가 불을 켰다 껐다한다. 기계가 전기세와 인건비를 줄여준다. 천장에는 감시카메라가 촘촘하다. 레시피와 살림정보를 주고받던 훈훈한 마켓은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하기야 계산대도, 계산을 기다리는 줄도 없는 식료품 매장 ‘아마존 고’가 “그냥 집어서 가세요!(Just grab and go!)"라는 모토로 시애틀에 오픈됐다는 소식을 벌써 듣지 않았던가.
인공지능 로봇이 10년 내 일자리의 70%를 위협한다는 기사가 이제 놀랍지 않다. 스스로 운전하는 무인자동차를 타고 로봇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읽으며 목적지를 향해 갈 것이다. 로봇이 요리한 음식을 먹고 ‘에코’로 음악을 듣는다. 아프면 로봇의사의 처방과 수술을 받을 것이다. 알렉사가 주문한 물건을 드론으로 받는다. 분명 편리한 신세계다. 그러나 사람과 기계의 소통이 긴밀해질수록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보기 힘든 세상이 아닐까. 축복일까, 재앙일까.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7/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