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와 열흘

 

친정엄마는 성격이 급하다.  어떤 생각이 들면 금세 행동에 옮겨야만 한다.  "내일 가려는데, 뭐 필요한 거 있냐?  아침에 바쁠 테니 나올 거 없고 택시나 셔틀타고 들어가마"  항상 도착 하루 전에 전화하고 자기말만 하고는 끊는다. 

 

 이번 방문은 목욕탕 샌들 산 것을 우리 집에 빨리 갖다 주어야 하기 때문 이었다.  목욕탕 발깔개에 떨어진 물방울이 항상 덜 마른 상태로 있기 때문에 균이 생긴다고  텔레비전에서 보고는 우리 집 생각이 나셨단다.  미국은 다 좋은데 목욕탕 바닥에 하수도 구멍이 없는 것이 틀렸다며 수리할 수 없냐고 또 물으신다.  발깔개를 당장 치우고 샌들을 놓으라고 여러 켤레 사오셨다. 나는 버릇이 안 되어 화장실 갔다가 샌들을 신고 그냥 나와 집안에서 돌아다니니 발도 안 시리고 좋았다.  그대로 지내다 잠자러 가니 며칠 후 우리 침대 밑에 목욕탕 샌들이 다 와있게 되어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다.  

 

남편이 공항에 나가고 나는 부엌이라도 정리할 요량으로 집에 남았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여, "이사 갈 집처럼 이게 뭐냐?" 소리를  들었다.  그냥 두었으면 평균 이라도 했을 것을 냉장고 정리 한답시고 부엌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꼴이 된 것이다.  

 

빈손으로 오시라 누누이 말씀드려도 항상 바리바리 싸오신다.  이번엔 각종 멸치, 북어 찢은 것, 고춧가루, 깨소금, '식혜 만들기'다섯 박스, 은행에서 얻은 빨간색 머그와  꽃무늬 쟁반세트, 아버지가 증권회사에서 상으로 받았다는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다.  내 선물로는 면세점에서 샀다는 얼굴 크림이 추가 되었는데 사연이 있었다.  눈치 없는 교회의 새 신자가 엄마더러,  '권사님, 참 곱게 나이 드셨네요. 여든은 되셨지요?'  하고 실제의 나이보다 다섯 살이나 더 얘기한 것이다. 젊어서 아낀다고 화장품까지 아꼈더니 쭈그렁 할머니가 되었다며 젊어서부터 피부를 잘 관리해야 한다며 제일 비싼 걸로 사왔다고 강조한다.  아침저녁으로 바르면 하루 종일 피부가 촉촉하고 주름 개선 효과도 있다고 화장품 세일즈맨같이 설명한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은행 다니던 아버지가 큰아버지 사업자금으로 큰돈을 대부해 준 것이 잘못되어 사는 집까지 은행에 넘어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몇 년 보냈다.  은행의 배려로 집은 공짜로 그냥 살았지만 집을 다시 찾기까지 엄마의 고생이 많았다.  이북 출신인 엄마는 생활력이 강하다.  6.25당시 열다섯 살이었는데 서울서 수원까지 피난 갈 때 재봉틀을 이고 걸어가서 키가 더 못 컸다고 무용담처럼 얘기하시곤 한다. 

 

은행 빚을 갚느라 냉장고와 라디오만 남기고, 텔레비전이나 전축 등의 사치품이라 생각되는 것은 다 팔았다.  우리들 백일이나 돌때 들어온 금붙이도 다 팔고 가구나 그릇등도 꼭 필요한 것만 있었다.  교복 말고 변변한 옷도 거의 없었으며 피아노 집에 가면 레슨보다 텔레비전 보기에 더 정신이 팔렸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수다 떨 소재가 필요한 나는, 집에 오는 길에 전파상 유리창으로 소리도 안 들리는 드라마와 만화를 한참서서 보곤 했다. 

 

어려서 엄마랑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 덮고 누워 라디오 연속극을 즐겨 들었다.  말솜씨 좋은 엄마의 설명에 내 상상력이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부지런한 엄마는 항상 뜨개질로 조끼나 스웨터, 쫄쫄이 바지를 떠서 우리에게 입히고, 처녀시절 국제복장학원을 다닌 실력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들어 주곤 했다.  나는 쫄쫄이 바지와 어딘지 어설픈 엄마의 아마추어 냄새나는 옷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빈방에 불 켜진 거 보면 난리가 나고 전기 콘센트에 플러그 꼽아 놓으면 35%의 전력 낭비가 있다고 보는 족족 빼기 바쁘다.  내가 새로 그릇 세트라도 사면 잔소리 하신다.  작은 돈을 아껴야 큰돈 모으는 법이라고.

 

중학교 때까지 연습장 한번 사본 기억이 없다.  신문에 딸려오는 광고지를 모아 뒷면을 연습장으로 써야했다. 나도 버릇이 되어 흰 종이가 휴지통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불안하고 빈방에 불이 켜있으면 불 끄라고 아이들에게 소리 지른다.  절약의 대물림 인가 어려서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을 닮는 나를 문득 발견한다.   

 

젊어서 너무 검소했던 엄마는 나이 드시면서 놀랍도록 비싼 사치품을 턱턱 사신다.  아등바등 살아온 것이 억울하다고도 하신다.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서 그런가 싶어 마음이 짠하다. 

 

엄마가 오면 온 집안의 물건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고, 마당의 꽃나무들도 말끔히 단장을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손자가 좋아하는 약식과 식혜를 만들고, 사위가 좋아하는 물김치와 밑반찬을 하신다.  나이 들으니 귀찮다고 서울에서는 부엌일을 거의 안하시는 엄마인데 우리집만 오면 앞치마를 잠시도 안 벗고 종종걸음이시다.  "이놈의 애프터서비스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하시며 당신을<국제 파출부>라고 하시지만 돈을 받기는커녕 우리에게 용돈을 주고 가신다.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신세지지 않으려 안간힘 쓰셔서 속상하다.  

 

어느 날 엄마가 차고 문을 열고 걸레를 빨고 있는데 동네를 산책하던 저먼 셰퍼드가 갑자기 다가와 물을 먹었단다. 개를 무서워하는 엄마가 화들짝 놀라자 개 주인이 나타나 미안하다며, “She is friendly." 하기에 엄마가 "Only you."라고 대꾸해 주었다며,  "동호야, 할머니 영어 잘하지?" 하며 우리를 웃기신다. 

 

집에만 계시려해 하루는 백화점에 같이 가서 반짝이는 구슬이 박힌 운동화랑 꽃달린샌들 하나를 사드렸다.  "더 늙으면 이런 요란한 거 못 신으니까 그냥 사"하고 망설이는 엄마에게 말하고 보니 말실수를 했다. 옷도 보자니까 피곤하고 다리 아프다며 집에 가자고 하여 그냥 돌아왔다. 엄마는 항상 나보다 더 빨리 더 잘 걸으셨는데 이제 확실히 늙으셨다.   

 

엄마랑 시장 봐와서 반찬 만들고 수다 떨며 즐거웠다.  "엄마, 동수 시집가서 아기 낳으면 엄마가 와서 목욕 시켜줘야 할 텐데, 난 아기 목욕 못시키잖아." 하며 엄마 부려먹을 궁리를 얘기 하는데 좋아 하신다.  한국서 노처녀 사촌 동생 결혼이 결정되었다고 연락이 와서 이번에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었다.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엄마의 진두지휘가 필요한 터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백화점에서 다리 아프다던 엄마가 총알처럼 건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빈 카트를 밀고 나온다.  "뭐 하러 카트에 돈쓰냐?"  알뜰한 우리 엄마, 못 말린다. 나도 엄마랑 같이 서울 가서 사촌 동생 신혼살림 장만에 이 참견 저 참견 하고 싶다. 영원한 나의 해결사 엄마, 건강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