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놓아주기
아기 때 말이 좀 느렸던 것을 빼놓곤 한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 없던 아들이었다. 말문이 터지고 청산유수로 능청스레 말을 잘 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아이가 자존심 강한 완벽주의자라서 그동안 말을 아꼈구나’하며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러하듯 내 아이가 영재일거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착실히 공부 잘하고, 운동과 음악에도 뛰어나 특별한 재주 없는 내게 웬 축복의 과분한 아이인가 하며 감사 했다. 굳이 흠을 찾자면 수줍은 성격인데, 그것도 차분하고 진중하여 그런가보다 하며 좋게만 보았다. 한마디로 콩깍지가 더블로 씌어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며 생일 선물 겸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공부방를 새로 꾸며주며 컴퓨터를 방에 들여놔 주었는데, 이것이 큰 실수임을 깨닫는데 1년이나 걸렸다. 아이를 너무 믿은 것이 탈이었나. 대부분의 시간을 책읽기 보다는 방문 꼭 닫고서 게임과 채팅으로 보내더니 10학년 올라가 AP과목이 많아지며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간식 가져다 주는 것을 핑계로 불쑥 아이 방에 들어가면 움찔하며 얼른 컴퓨터 스크린을 바꾸는 아이를 본다. 그러면 어른처럼 의젓하게 타이르진 못하고, ‘네가 지금 게임이나 하고 채팅으로 노닥거릴 때냐’고 소리를 꽥 지르게 된다. 자식을 믿지 못하는 엄마와 슬슬 눈치나 보며 요령이나 피우려는 자식 간에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졌다. 공부에 집중해야하니 당장 크로스컨츄리 달리기와 오케스트라를 그만 두라는 나의 요구는 콧등으로도 안 듣고 예민한 사춘기와 겹쳐서 부모 무시하는 듯한 말투와 찡그린 얼굴로 내속을 긁었다.
다수의 이민가정처럼 우리 부부도 전공과 무관한 스몰비즈니스를 하면서 아이들 교육에 모든 것을 걸은 양 정성을 다해왔다. 특히나 남편은 자신을 위해선 취미 하나 갖지않고 모든 생활을 철저히 아이들 위주로 했다. 드러내놓고 말은 안했으나 부모는 체면 다 버리고 고생하니 너희도 너희의 할 도리를 해야 한다고 강요 했다. 칭찬에는 인색했으며 주변의 특별히 뛰어난 아이들과 비교나 일삼으며 아이를 질식케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 자신의 행복보다는 남보기에 자랑스러운 아이 키우기에 전념하고,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칭찬을 듣고자 했다.
나이들어 이민와서 겪어야 했던 열등감, 답답함, 억눌림을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아이에게 원했다.
아이에게 심하진 않으나 한쪽 눈을 찡긋대는 틱장애가 생겼다. 의사선생님께 의논하니 예민해서 그러니 칭찬을 많이 하고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해주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컴퓨터게임과 채팅에 빠져 학교성적 망쳐놓은 아이를 칭찬하기는 힘들었다. 어쨌든 틱이 생긴 것이 나의 탓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아들에게 원래부터 엄하던 남편과 아들간의 불편한 관계도 보기 힘들었다. 부담스러운 부모의 과도한 기대에서 벗어나 숨통을 틔워 주어야 했다. SAT준비를 해야 하는 10학년 여름방학이지만 시험 준비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려는 마음가짐과 자신감이라 생각했다. 부모와 자식간에 무너진 신뢰의 회복도 급했다. 궁리끝에 서로 좀 떨어져 있어야 될듯하여, 타주의 대학 섬머캠프를 생각 했다. 아이도 집을 떠나있고 싶었는지 좋아하며 여러학교를 알아본 뒤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로 가기로 하였다. 혼자 집 떠나있으면서 여러가지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 미래설계에 보탬이 되고 가족의 소중함과 고마움도 느끼게 되길 바랬다. 아직 어린나이지만 혼자 비행기를 태워 보내니 아이는 긴장했는지 코피까지 쏟았다. 어쨌든 잘 도착해서 택시타고 기숙사로 가는 길 이라며 달랑 전화 한통이 왔다. 그 후로는 매번 내 쪽에서 먼저 전화하고 전화 안 받으면 메시지 남겨서야 겨우 리턴콜을 받곤 하였다.
일주일이 지난 후 방학으로 집에 와있던 큰딸이 facebook에 아들애 사진이 올라왔다며 보여주는데,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아이의 독립적 성숙을 기대하며 조용한 시골 분위기의 학교에서 컴퓨터를 끊고 공부에 몰두해 주길 바랬는데, 새로 사귄 중국여자친구와 찍은 갖가지 다정한 포즈의 사진들은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충격이었다. 미시시피강가에서 카약 타느라 싱글벙글하며 노 젓는 모습, 그 여자애 방이 분명한 빨강 하트 무늬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 손잡고 둘이 산책하는 모습 등. 아주 좋아 죽는다. 집에서 항상 보았던 찡그린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그야말로 '인조이 섬머다. 5주 동안 부지런히 새 사진이 올라와 더이상 아무것도 궁금치 않아 전화할 필요도 없었다.
착실하던 고교생아이가 여자애를 사귀어 임신, 출산하여 학교도 그만두고 육아와 돈벌이 아르바이트로 고생하는 내용의 드라마를 라이프타임 채널에서 수년전 보았던 기억이 났다. ‘혹시나’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났다. 그러고 보니 공부타령이나 했었지 아이에게 성교육을 시킨 적은 없었다. 항상 어린애로만 생각 했었는데,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중국 사위는 괜찮아도 중국며느리는 영 아니라던데. 사진을 자세히 보니 귀여운 얼굴인데 손톱도 하고 화장도 하여 나이는 우리애보다 훨씬 더 들어 보였다. 어느 이른 아침 아이가 먼저 전화를 했길래 반갑게 받으니, ATM에서 돈을 찾으려는데 세이빙에서 뽑나, 체킹에서 뽑나를 묻는다. 그처럼 기본인 것도 모른다니, 아직 어린애 맞다. 현금도 내 딴에는 넉넉히 주었건만, 둘이서 실반지라도 나눠 끼웠나 의심을 해보며 내가 또 오버하지 싶어 피식 웃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오자마자 웹캠설치에 바쁘다. 집에 있는 것을 왜 샀느냐 물으니 선물 받은 것이란다. 침대 머리맡에 봉제 기린인형이 놓이고 실반지 대신 팔목엔 가죽매듭 팔찌를 했는데 한시도 빼질 않는다. 흥분하여 지난 5주 동안의 일을 얘기하는데 명랑해졌으며 적어도 틱장애는 없어진 듯하다.
목사님이 설교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구절을 인용 하셨다. 아이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가득하여 그런지 나일론 신자인 내게도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아 금방 성경구절이 외워졌다. 지극히 평범한 아이에게 나의 욕심으로 과도한 기대로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이유기가 벌써 끝난 아이를 언제까지나 젖먹이마냥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책 제목마냥 ‘참으로 소중하기에…조금씩 놓아주기’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