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가족(D-69일)
뜨거운 샤워를 하다가 물이 미지근해지며 급기야 찬물로 바뀌는 일처럼 화나는 일은 없다. 갑자기 늘어난 식구들이 물탱크의 온수를 다 써버렸나 보다. 여동생이 기러기 가족으로 LA에 온 후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때까지 우리 집에 머물고 있다. 친정식구인 탓에 불평은 못한다.
경쟁 심한 한국에서 아이들을 밤 늦게 까지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기가 싫어 큰 결심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미국에 사는 것이 큰 의지가 된다고 하니 은근히 부담도 되지만, 달랑 우리 네 식구로 쓸쓸했는데 피붙이가 가까이 살러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멀리 사는 나대신 그동안 부모님과 가까이 살며 돌보아 드린 것에대한 고마움을 갚을 좋은 기회이다.
동생의 이삿짐에 딸려온 오락기인 ‘위’덕택에 온 가족이 모여서 크게 웃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며 공부 채근하느라 함께 모여 게임을 즐기며 웃고 떠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식구별로 아바타를 만들어 스키, 골프, 테니스, 훌라후프 등 운동을 하는데 편을 먹고 경쟁을 한다. 어른 아이 구분없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재미있고 신난다. 대학입시 준비로 얼굴 보기 힘들던 아들도 다시 어린애가 된 듯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방학으로 집에 온 대학생 딸이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찾아 식구가 함께 음식을 만든다. 요리를 즐기는 초등학생 어린 조카들이 도우미가 되어 재료 밑 손질을 해놓으니 일이 훨씬 손쉽고 즐겁다. 오트밀에 꿀, 아보카도를 으깨어 천연 팩을 만들어 서로 얼굴에 발라 주며 깔깔댄다.
공부닥달보다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하는 동생의 성숙한 부모 역할을 가까이 보며 느끼는 것이 많다. 나는 대학 가는데 불필요한 것에는 한눈 팔지 못하게 아이들을 다그치기만 한건 아닐까. 빨리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바라는 이민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이었을까.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빨리 조급증을 부렸다.
스마트폰으로 아이들 사진을 그때그때 전송하고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는걸 보니 디지털시대 의 기러기 가족은 할만 하구나 싶다. 14년 전 우리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만해도 높은 국제전화요금에 전화도 자주 못했었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보고시퍼’ ‘나도' ‘사랑해’ 가끔 우연히 보게 되는 동생의 전화텍스트에 나는 “야! 가족끼리 무슨 연애질이냐?” 하고 놀리기도 하지만 솔직히 부러웠다.
여러 식구가 부대끼며 왁자지껄하게 지내니 불편함 점도 있으나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좋은 기회였다. 서울서 간단한 짐만 부쳐와서 그간 내가 생각 없이 사들였던 가구며 가전제품들을 나누어 주니 우리 집이 훨씬 넓어진 느낌이다. 동생의 식탁, 소파, 침대 등을 고르면서 자매간의 비슷한 취향에 놀란다. 마치 신혼집을 꾸미듯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쇼핑하니 신바람이 난다. 서울서 같이 살았으면 서로 도우며 재미있게 지냈을 텐데.
아이들 뒷바라지를 남편 없이 혼자 하며 자기 공부도 해야 하니 기러기 엄마로서 감당할 몫이 결코 녹녹하지는 않으리라. 그동안 못한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해야 하지만, 야무진 동생의 도움을 벌써 많이 받는다.
이사 나간 후 어느 날 동생네 전화를 했다. 조카가 받기에, “하민아, 저녁 뭐 먹었어? 하니, “라면이요” 한다. 라면이 먹고 싶었나, 아니면 남편 없는 밥상 이것저것 차리기 귀찮았나. “주말에 이모 집에 와. 맛있는 거 많이 해 놓을게.” “이모, 오늘이 D-69일 이예요.” “뭐가?” “방학에 한국 가는 거요”
제부가 연휴에 주말 끼워 다녀갔건만, 애들은 한국을 벌써 그리워 한다. 아니 아빠랑 모두 모여 사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아이들 행복 때문이라지만 기러기가족 결정이 과연 잘 한 것 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