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서답

  생각지도 않았던 낭패를 말 때문에 겪는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했는데 가끔은 머릿속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경우가 있다. 상대의 의중이나 기분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결국은 사단을 일으킨다. 친한 친구 사이라면 ‘어쩌면 네가 나한테…….’ 하는 섭섭함까지 가세하여 수습하기가 더욱 어렵다. 

 
  며칠 전이었다. 모처럼 친구들이 모여 아침을 먹었다. 모임의 리더 격인 친구가 자기 이야기를 심각하게 풀어놓는데 눈치 없는 순진무구 친구가 엉뚱한 말로 자꾸 맥을 끊었다. 짜증이 난 리더가 정색을 하더니 면박을 주었다. 그냥 농담처럼 주는 핀잔이 아니라 언짢은 감정이 실려 있는 말투였다. 갑자기 당한 말의 횡포에 얼굴이 빨개진 순진무구 친구는 헤어질 때까지 눈을 내리깔고 커피만 홀짝거렸다. 접시에 담긴 달걀도 베이컨도 그대로인 채 애꿎은 냅킨만 접었다 폈다 했다. 곁에서 보는 내가 민망해서 오히려 허둥댔다. 그렇게 심하게 쏘아댈 일도 아닌데 참 너무한다 싶었다. 리더 친구가 예전과 달리 보였다.

  오늘 세탁소 앞에서 리더 친구를 딱 만났다. 그날 너무 심한 것 같지 않았느냐며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반성했나 싶어 반가웠다. “그 애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니? 전화라도 해서 좀 풀어 주...”라고 하는 내 말과 동시에 "그 애는 항상 그래. 이번에 내가 쐐기를 잘.... " 친구의 말도 나왔다. 서로 놀라 흠칫 뒤로 물러섰다. 친구가 실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미처 변명할 여지도 없이 휑하고 뒷모습을 보이며 가 버렸다. 나는 엉거주춤 세탁물을 들고 서서 내 입을 찧었다.


  우리는 때로 내 마음의 그림으로 생각을 굳혀 상대방의 뜻과는 상관없는 대답을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의 그림을 보지 못하는, 아니 보려 하지 않는 경우에서 비롯된다. 영어에도 ‘I’m talking about Apple, and you’re talking about Orange’ 하고 하지 않는가. 기업에서도 면접을 볼 때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지원자의 실수 중 첫  번째는 지각(27.1%)이고, 두 번째는 동문서답(19.1%)이라고 한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하는 대답이든 머리에 상대방의 말이 입력되지 않아서 엉뚱한 말을 갖다 대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우스개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미국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환영인파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검지를 불쑥 세워 올렸다. 환영객들은 어리둥절 하는데 한 남자가 손가락 두 개를 내밀어 화답했다. 두 사람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목사님은 얼른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두 사람의 능숙한 수화를 목격한 취재 기자들이 놀랐다. 목사님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손가락 하나를 내밀며 이 세상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했지요. 그랬더니 그분이 V자를 그리며 우리 승리 합시다 하더군요. 내가 곧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축복한다고 세 손가락을 폈습니다. 오, 그가 주먹을 쥐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함께 뭉치자고 하더군요.
  그 남자는 애꾸눈이었다. 그는 씩씩거렸다. 나를 보고 너 눈 하나군 하더라고요. 그래, 당신은 눈이 두 개라서 좋겠다고 했죠. 근데 우리 둘 눈을 합하면 세 개다 그지? 하잖아요. 당신 내려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주먹질을 했죠.
이야기를 처음 듣고는 한참 웃었다. 그러나 한편 섬뜩하기도 했다. 웃으려고 꾸며낸 것이지만 어떻게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마음 밭의 크기와 깊이만큼 느끼고 행동한다. 상대가 아무리  귀한 말을 해도 내가 수용할 그릇이 못 되면 자기 수준에 맞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쌀쌀하게 돌아선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비록 내 안의 폭이 좁을지라도 상대방의 말을 한두 번쯤은 마음속에서 공굴려보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벌레를 먹고도 단단하고 예쁜 알을 낳는 새처럼, 가슴을 탕탕 칠 만큼 억울한 말을 들어도 내 청명한 마음의 그림에 갖다 대며 아, 경치가 좋구나 하는 동문서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파킹랏으로 걸어 나오며 옛날의 실수를 떠올린다. 부산에서 영어 회화 학원에 다녔다. 몇 명 안 되는 교실에서 백인 남자 선생이 내게 질문을 했다. 결혼 했어요? 그럼요. 아이가 몇 명이예요? 67명. 갑자기 교실 안이 웃음소리로 왁자해졌다. 초보 영어회화반이라 선생님의 질문을 긴장해서 듣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나이가 제일 어려 보이는 내가 결혼을 했고 거기다 아이가 67명이라니. 결혼(marriage)을 ‘즐겁니’(merry)로 들었고 아이들(children)을 학생들로 해석했다. 뒤늦게 내가 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또 한바탕 웃은 기억이 난다.

뻘쭘한 나를 보고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던 사람들. 내 등을 살며시 두드려 주며 오케이 오케이 하던 그 사람들이 새삼 보고 싶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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