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밍데일 CCTV
이상하다. 운전면허증이 없다. 지갑에는 자동차보험 카드만 허옇게 보일 뿐 그 앞에 버티고 있던 면허증이 사라져 버렸다. 큰일이다. 내일이면 뉴욕행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오늘 하루를 찬찬히 되짚어 본다. 아무래도 블루밍데일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 겨우 티셔츠 하나 값을 계산하는데 점원이 계산기를 만지며 몹시 허둥대는 것 같아 불안하더니 기어이 그녀가 실수를 했구나 싶다.
백화점으로 가기 전에 먼저 전화를 했다. 교환원이 이리저리 사람을 찾은 끝에 내가 산 티셔츠 브랜드 섹션으로 연결해 주었다. 담당 여직원이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서랍을 모두 뒤져준다. 그러나 없단다. 메니저를 바꾸어 달라고 했다. 그도 한참 기다리게 하더니 대답은 마찬가지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갑자기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당장 내일 비행기를 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계산대에는 짧은 머리가 상큼한 백인 여자가 있다. 아까 통화한 여자인 듯 나를 금방 알아본다. 서랍은 물론 계산대 위에 있는 서류더미까지 모두 내 앞에서 다시 뒤진다. 나는 여기 외에는 아무 곳에서도 운전면허증을 꺼낸 적이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여자가 메니저를 부른다. 메니저도 나와 통화했던 그 남자다. 그도 역시 답답한 얼굴이다. 어떻게해도 증명이 안 되니 C CTV를 돌려 보겠다며 사무실로 급히 간다. 반가웠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게 무척 다행이다.
얼마 후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테이프를 돌려보니 내게 도로 준 것이 확실하단다. 무슨 말이냐고. 내가 돌려받은 것은 비자카드라고 반박을 했다. 비자카드를 카메라 앞에 한번 내밀어 보라고 한다. 얼른 카메라 앵글이 비치는 곳에 카드를 디밀었다. 수화기 저 쪽에서 목소리 톤이 밝아지며 돌려준 것은 이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직접 CCTV를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다. 공손하게 생긴 남자가 어딘가에서 나타났다.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지하에 있는 사무실로 갔다. 메니저가 컴퓨터 USB를 들고 나온다. 구석 자리 빈 책상 위에 컴퓨터가 잘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런 경우가 종종 있나보다. 모니터에 내 모습이 선명하게 나온다.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아시안 아줌마가 계산을 하고 있는 점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지루한 듯 점원의 손을 따라가던 눈을 계산대 옆에 개켜져 있는 노란 원피스에 꽂았다. 손을 뻗어 쓰윽 당겨서 펴 본다. 자기 몸에 대어보더니 다시 접어서 도로 제자리에 놓는다. 손으로 입도 가리지 않은 채 하품을 한다. 점원을 다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방을 막 뒤진다. 꾸부정하게 굽은 등이 민망하다. 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머리를 손으로 쓰슥 만지고는 도로 집어넣는다. 함께 장면을 보는 메니저가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점원이 여자에게 뭐라고 하니 가방을 뒤져 지갑을 꺼낸다. 비닐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운전면허증을 끄집어낸다. 점원이 꾹꾹 넘버를 찍고는 운전면허증을 탁자 위에 얹는다. 저렇게 탁자 위에 두고는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모니터만 들여다본다. 모니터 속의 나는 지갑을 바닥에 펼쳐둔 채 펑퍼짐한 엉덩이를 계산대에 반쯤 걸친다. 핸드백은 있는 대로 열려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인다. 핸드폰도 보이고 구겨진 휴지 조각도 보인다. 남자 보기가 창피하다. 점원이 다시 면허증을 집더니 손바닥에 감싸 쥔 채로 영수증을 빼 올려 사인하라고 내게 디민다. 내가 사인을 하고 나니 손바닥을 획 뒤집어 면허증을 내게 돌려준다. 지갑에 쑤셔 넣느라 내 머리가 숙여졌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노란 카드를 톡톡 가리키며 웃는다. 그럴리가? 내가 얼굴을 모니터에 바짝 붙이니 다시 돌려서 보여준다. 아니라고. 그건 비자카드라고 우겼다. 이번에는 그 장면만 정지 시킨다. 틀림없이 운전면허증이다. 내 젊은 날의 얼굴이 한 귀퉁이에서 활짝 웃고 있다. 남자는 리와인드 해서 자꾸 보여준다. 웃고 있는 내 얼굴이 지갑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계속 들어간다.
미안하다를 몇 번이나 말하면서 나왔다. 진짜 미안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뺏었다. 남자는 친절하게 어깨까지 두드려 준다. 집에 가서 다시한번 잘 찾아보란다. 고개를 들 수 없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왔다. 뜨겁게 달궈진 차에 앉아 지갑 속에 있는 카드들을 모두 뽑아내었다. 지갑에 빽빽이 꽂혀있던 카드들이 한꺼번에 의자에 널린다. 이런 이런, Costco 카드 등에 면허증이 딱 붙어있다. 이게 왜 엉뚱한 이곳에 꽂혀 있나.
생각해보니 CCTV가 너무 무섭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남김없이 찍히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감시 당하고 있다. 언제든지 다시 돌려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나님도 이런 CCTV를 찍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갑자기 든다. 하나님의 것은 우리의 마음까지도 찍을 수 있을 텐데.... 뉴욕으로 가기 위해 오늘 하루를 온통 운전면허증 찾기에만 열중한 것처럼 하늘나라로 가기위해 얼마나 절실하게 살고 있나하는 생각도 든다.
갑자기 차 안이 너무 덥다. 차창을 모두 내렸다.
<사람이 고향이다 2016><크리스챤 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