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이 글을 줄여서 보냄

어머니의 텃밭(원본) / 정조앤

 

  매년 어머니날에 오 남매 가족이 모인다.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위한 시간이다. 넓은 뒷마당에서 풍미가 가득한 바비큐 파티를 연다.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친정엄마는 각종 야채를 먹음직스럽게 소쿠리에 담아 내놓는다.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것이라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설명에 한참 열을 올리면 우리는 덩달아 맞장구치며 어머니의 어깨에 힘을 싣는다.

   어머니가 계시는 시니어 아파트 단지 안에 텃밭이 있다. 채소를 재배하고 싶은 여러 세대에게 두 평 남짓한 땅을 분양해 준다. 공짜는 아니지만 거의 공짜 수준이다. 일 년에 물 사용료 3불만 내면 된다고 하니 눈독 들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분양받은 분들 가운데 거동이 불편해지면 텃밭을 내놓겠지만 쉽지 않다고 한다. 대기자 명단에 올렸지만 십여 년째 꼼짝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들린다.

   어머니를 찾아뵐 때면 텃밭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모녀가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갓 솎아낸 각종 채소와 열매를 따서 한 보따리 챙겨 주신다. 그 속에는 대파, 부추, 상추, 고추, 호박, 깻잎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가까이 사는 네 명의 딸에게 나누어 주고도 남아서 멀리 사는 막내둥이 아들 몫으로 오이지와 고추 장아찌를 만든다. 자녀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정겹다 못해 아련하다.

   내 집 뒷마당에도 텃밭이 있다. 은퇴 후 소일거리로 텃밭을 만들었다. 비록 작은 평수지만 딱딱하게 굳은 땅을 파고 뒤집는 일이 여간 고되지 않았다. 홈디포(The Home Depot)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퇴비와 거름을 사서 메마른 흙과 섞었다. 그다음에 두둑을 만들고 고랑을 파고 이랑을 만들었다. 처음 접하는 일이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땀 흘린 만큼의 즐거움이 있었다. 궁금한 것은 친정엄마에게 여쭤보고 유튜브 채널에서 정보를 얻었다. 이리저리 보아도 어머니 텃밭을 따라 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머니 텃밭에서 키워낸 모종을 얻어다 심었다. 종일 햇볕이 내리쬐는 남향에 자리 잡은 곳이라서 그늘이 필요로 했다. 알맞는 크기의 고깔모자를 만들어서 씌어 주었다. 가녀린 허리를 곧추세우고 흙 속으로 뿌리를 잘 내리기만을 기다린다. 조금만 방심하면 달팽이들의 밥이 되고 성장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는 걸 보았다. 모든 일에는 보살핌과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어머니의 텃밭은 남다르다. 좋은 퇴비를 사용하려고 애쓰신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한약재와 들깨를 압축하고 남은 찌꺼기를 얻어오는 극성스러움이 있었다. 그 때문인가. 눈에 띌 만큼 농사가 잘되어 구경 오는 분들이 있을 정도이다. 채소들은 짙은 푸른빛으로 쑥쑥 자라고 한쪽에서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열매가 열린다. 채소 한 포기, 한 포기를 대하는 마음이 신중하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줄기가 튼튼해지고 우량품종으로 변하여 간다. 어머니가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랑으로 키웠듯이 농부의 심정이 되어 흙을 보듬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내가 텃밭을 일구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농사꾼도 아닌 어머니는 단지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텃밭에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다섯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 함경도 또순이 별명답게 강한 성격이지만 애달픈 삶을 사셨다. 과거에 얽매어 자신의 삶을 한탄하기보다는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다루며 즐기시는 어머니가 매우 자랑스럽다.

   오늘도 텃밭에서 허리 굽혀 일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그려본다. 아직도 기댈 수 있는 넓은 등이 보인다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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