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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뮤어 트레일 다시 가다 / 정조앤

 

  존 뮤어 트레일은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이다. 자연보호 운동가이며 요세미티, 세쿼이아 국립공원 지정에 공이 큰 존 뮤어(John Muir)의 저서 <자연과 함께한 인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숲속으로 가라. 그곳에 진정한 휴식과 안락이 있다. 깊고 푸른 숲속만큼 평온함을 선사해 주는 곳도 없다.’

   원시적인 자연이 보존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보석, 존 뮤어 트레일(Tail) 입산 날이 다가온다. 이번에는 2번째 구간으로 향한다. 가기 전에 고산에서 적응 훈련은 필수이고 적어도 석 달은 준비를 해야 하는데 느닷없이 불어닥친 코로나19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미국 국립공원과 주립공원이 문을 닫고 인근 공원과 산길도 다 막혔다. 그 여파로 산악회 활동도 중단되었다.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예년과 다름없이 존 뮤어 트레일은 열려있다니 다행이다. 고산 훈련할 곳을 찾다 보니 샌버나디노 카운티에 위치한 산맥 몇 군데가 오픈되어 있었다. 그곳까지 2시간 남짓 운전하며 프리웨이를 달린다. 모든 경제가 셧다운 된 상태에서 도시들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이 와중에 고산 적응을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집안에서 코로나19 뉴스에 온 신경을 모으기는 더군다나 싫다. 몇 달이라도 좋으니 깊은 산속에 지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일주일에 한 번은 샌버나디노 산맥으로 향했다. 그곳은 훈련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남가주 최고봉 샌 골고니오(11503피트)을 비롯해 1만 피트 이상 되는 고봉이 많은 곳이다.

  5년 전, 이맘때쯤이었다. 존 뮤어 트레일 첫 구간 56일간의 입산을 앞두고 있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잠을 설쳤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훈련하기 위해서 LA 근교 볼디 산으로 꾸준히 다녔다. 어느 날 그곳 정상 부근에서 산악인 김석두 선생님 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이 미국 최고봉 마운틴 휘트니(14,508피트)를 칠십 중반에 등정했다는 J 신문 기사를 읽고 감동했던 터라 반가움에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분께 조언을 구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볼디 산은 백두산보다 높고 난도가 최고조에 속하지만, 꾸준히 오르기만 하면 그보다 더 높은 산도 오를 수 있다며 큰 용기를 주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석두 선생님은 볼디 사랑 샘 김으로 800회 이상 등정하신 기록을 갖고 있어 타인종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분이셨다. 등에 짊어진 배낭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매달고 다니며 코리아의 위상을 알리는 일에도 정열을 쏟았다. 월드컵 축구 열기가 한창이었을 때 김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외치면 오가는 등산객들이 짜자 짝! ! !’ 손뼉을 쳤던 기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나는 그날에 받은 격려에 힘입어서인지 휘트니 등정과 존 뮤어 트레일 첫 구간을 무사히 마쳤다. 이제 존 뮤어 트레일 두 번째 구간은 남편과 함께 훈련하며 준비하고 있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남편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우리는 가져가야 할 품목들을 메모하고 있다. 서로에게 이것은 필요하다. 아니, 없어도 된다고 하며 가벼운 입씨름을 한다. 마지막 점검할 때는 빼야 할 것이 또 있지 않을까. 백패킹은 무게와의 싸움이다. 몸과 마음이 짓눌리면 백패킹을 묘미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존 뮤어 트레일은 멀리서 바라볼 때 산봉우리는 곡선이지만 속살은 태곳적의 모습이다. 때로는 돌밭을 걷기도 하고 물속으로 가로질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경이로운 풍경은 예술작품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가 그 자연의 일부가 된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바람과 구름을 벗 삼아 걷다가 심신이 지쳐갈 때면 맑은 호수에 몸을 담그고 하늘을 우러러보리라. 그리고 자연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리라. 높은 산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면 그들은 달려와 나를 포근히 감싸 줄 것이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신비로운 자연의 한 모퉁이를 돌고 돌아서는 나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열린 광장] 존 뮤어 트레일을 다시 가다

정조앤 / 수필가
정조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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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20/06/24 미주판 17면 기사입력 2020/06/23 18:33

자연보호 운동가이며 요세미티, 세코이아 국립공원 지정에 공이 큰 존 뮤어(John Muir)의 저서 ‘자연과 함께한 인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숲속으로 가라. 그곳에 진정한 휴식과 안락이 있다. 깊고 푸른 숲 속만큼 평온함을 선사해 주는 곳도 없다.’

올여름 8월경에 존 뮤어 트레일(Trail) 2번째 구간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고산에서 적응 훈련을 위해 남편과 함께 샌버나디노카운티 산맥으로 여러 번 다녀왔다. 남가주에는 최고봉 샌골고니오 산(1만1503피트)을 비롯해 1만 피트 이상 되는 고봉이 많다. 그곳은 아직 눈 덮인 겨울 왕국이었다.

5년 전 첫 번째로 존 뮤어 트레일에 입산했다. 시작을 앞두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LA 근교 볼디 산에서 꾸준히 백패킹 훈련을 했는데 그런 중에 산악인 김석두 선생님 부부를 만났다. 미국 최고봉 마운틴 휘트니(1만4508피트)를 칠십 중반에 등정한 분이다. 신문에서 두 분의 기사를 읽고 감동받았던 터라 반가움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분은 볼디산은 백두산보다 높은 고산이며 난도가 최고조에 속하지만 꾸준히 오르기만 하면 해낼 수 있다고 하며 큰 용기를 주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석두 선생님은 ‘볼디 사랑 샘 김’으로 타인종에게도 유명한 분이셨다. 등에 짊어진 배낭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매달고 다니며 코리아의 위상을 알리는 일에도 정열을 쏟았다.

축구 열기가 한창이었을 때는 김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외치면 오가는 등산객들이 ‘짜자 짝! 짝! 짝!’ 손뼉을 쳤던 기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분의 말에 용기백배해 휘트니 등정과 존 뮤어 트레일 첫 구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두 번째 구간은 남편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라서 그런지 등에 짊어지고 갈 배낭 사이즈가 그다지 겁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의 짐까지 홀가분하여 날아갈 듯 기쁘다. 남은 날 동안 백패킹 훈련에 집중해야겠다. 칫솔을 반 토막으로 자른들 얼마나 무게가 줄어들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 개의 무게를 알면 다른 것들이 연속적으로 눈대중으로 파악이 된다. 가져가야 할 품목들을 꼼꼼히 살펴서 몸과 마음이 짓눌리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려한다. 

멀리서 보는 산봉우리는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속살은 거칠기 그지없다. 거친 들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내가 그 자연 속에 스며들어 있다. 구름이 되어 바람이 되어 가다가 심신이 지쳐갈 때면 맑은 호수에 몸을 담그고 하늘을 우러러보리라. 물속에 비치는 산들은 두 팔을 벌리며 큰 가슴을 열어 나를 포근히 안아 줄 것이다. 마침내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신비로운 자연의 한 모퉁이를 돌고 돌아서는 나를 발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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