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ert Garden / 정조앤

  우리 집 앞마당은 Desert Garden이다. 사막 기후에도 적응하는 토착 식물과 다육식물이 무리 지어 자란다. 건조하고 강한 면이 있지만 볼수록 매력덩어리다. 그들로 인해 미소 짓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지난 여름부터 계기가 됐다.  

  작년 이맘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났다. 백인 중년 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미세즈 정이냐고 묻는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물으니 대뜸 축하한단다. 당신네 정원이 여름호에 실렸다며 타운 소식지를 펼쳐 보인다. 사진을 보니 분명했다. 맞아, 나의 정원이야!     

  오래전부터 마당에는 초록 잔디가 깔려 있었다, 뜨락에는 초롱꽃 캄파넬라와 루피너스, 데이지와 수국 등 여러 꽃이 키재기를 하듯이 계절마다 피어났다. 정성을 쏟으며 가꿨던 정원이었다. 지금은 잔디도 꽃도 온데간데없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2015년 캘리포니아주는 가뭄 사태로 혹독한 물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카운티 산하 시 정부는 주민들에게 '제발 물 좀 아껴 쓰십시오.'라며 신신당부했다. 엄격한 시어머니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모든 사업체는 물론 서민들에게까지 강제 절수령이 내려졌다. 사용량의 기춘치를 벗어나면 벌금을 물게 하겠다는 조항까지 만들었다. 그 이후 나는 물 절약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먼저 수압을 약하게 조절해 놓았다. 3/1 정도 줄인 물줄기로 샤워하고 음식재료를 씻은 물은 정원에 뿌려줬다. 설거지도 물통에 받아서 헹궜다. 큰 정원을 가진 저택은 감시 대상이 되었다. 그들이 물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고액의 벌금을 물게했다. 심지어 미디어들도 고발을 부추기는 여론몰이를 하여 부촌에 잠입한 이들이 동영상을 찍어서 SNS에 공개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그 지경에 이르자 우리집 잔디는 점점 누렇게 말라갔다. 이웃집 정원들도 매한가지였다. 어느집 정원의 잔디가 푸르게 자라면 저 혼자 잘 살겠다는 놀부처럼 느껴졌다. 그럴즈음에 주정부에서 대안을 내놓았다. 잔디 대신에 절수형 식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TV 뉴스에 사막 정원(Desert garden)을 만드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트럭에 한가득 싣고온 돌맹이 무더기를 앞마당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볼품없는 토작 식물(native plants) 몇그루를 달랑 땅에 묻었다.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왔다. 이참에 내가 직접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두팔을 걷어붙이기로 했다. 

  어느 날 정원사를 불러서 앞, 뒤 정원 잔디를 다 갈아엎었다. 그 자리가 낯설었다. 섣불리 일을 저질렀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던가. 몇군데 화원을 찾아다니며 품종을 골랐다. 뒷마당에는 과실나무 몇그루를 심었다. 일 년 동안 잘 보살펴주면 그 후로는 잘 자란다고 한다. 앞마당에는 사막기후에도 잘 견디는 선인장과 다육식물 여러 종류를 듬성듬성 심었다. 잘 성장하고 번식하기를 어미가 자식을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의 간절함이 닿았나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풍성하게 메워갔다. 색다른 즐거움이다. 나뿐아니라 우리 골목 사람들의 눈길도 끌었나보다.

 백인 부부는 내게 상품권을 내민다. $50 상당의 T 식당 무료 쿠폰이라며 좋은 시간을 보내란다. 살다 살다 이런 좋은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 더군다나 이웃들에게 관심을 받게 될 줄이야. 막연했던 생각이 이제 사명감으로 바뀌었다. Desert Garden을 잘 선택했다는 자부심마저 든다. 앞으로는  미적인 감각을 살려서 사막정원을 제대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잔디가 있는 집은 외향적으로 깔끔하다. 그 때문에 정원에 초록 잔디가 없다는 사실을 한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절수형 식물을 심은 것은 잘한 일이다. 그들은 이슬만 먹고도 푸르게 생명을 잉태하며 활기차게 뻗어 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드는 마음으로 그들을 눈 맞춤으로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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