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광장-[수필] 천사가 머물다 간 곳

정조앤 / 수필가
정조앤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20/08/07 미주판 17면 기사입력 2020/08/06 18:45

"자이언 캐년이
내 품 안에 들어온다
자연이 빚은 웅장함과
세심한 숨결에
나의 심장 박동은
방망이질 친다"

 

앤젤스 랜딩(Angels Landing)은 자이언 캐년에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국립공원에서 최고 등급인 하이킹 20코스를 선정했다. 1916년 이 지역을 탐험하던 프레더릭 피셔가 있었다. 그는 절벽을 올려다보면서 “오직 천사만이 그 위에 머물 수 있다”라고 말한 것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 이른 아침 국립공원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그로토에서 내렸다. 버진 강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서쪽 산길로 걸어 들어갔다. 마침 우뚝 솟은 앤젤스 랜딩이 보였다. 붉은색을 두른 바위가 장엄하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냉장고 협곡(Refrigerator Canyon)이다. 말 그대로 그늘진 계곡에서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마시는 기분이다. 그곳을 벗어나면 정상에 오를 때까지 땡볕과 함께 걸어야 한다. 드디어 윌터 이글스가 나오는데 그 길은 공사를 담당한 직원의 이름이다. 가파른 절벽을 깎아서 만든 스물두 개의 스위치백 트레일이다. 차츰 고도가 빠르게 변하면서 숨이 거칠고 호흡이 가빠온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비스듬히 자이언 캐년의 절경이 내 눈앞에 있다. 그 사이 2마일 지점인 스카우트 전망대에 다다랐다.

이제부터 엔젤스 랜딩이 시작된다. 편도 0.5마일 거리는 매우 좁고 가파르게 보인다. 목을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니 바위에 붙어서 개미 떼처럼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초입에 경고문이 큼직하게 붙었다. '당신의 안전은 당신이 책임지라'고 선포한다. 그 문구를 읽노라니 몸이 오싹해진다. 2004년 이후로 이 구간에서 여섯 명이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용기 있는 사람은 도전해 보세요'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려온다. 열 명 중에 여섯, 일곱 명은 포기한다는 말이 실감 났다.

난간에는 굵은 쇠사슬이 트레일을 따라 이어졌다.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데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체인을 힘껏 잡아당겼다. 바위에 몸을 기대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바위에 등산화가 착착 붙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안심이다. 체인이 없는 구간도 있다. 모두가 네발짐승이 되어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좁은 바위틈 사이에 손가락과 발에 힘을 주고 오르고 내리기도 한다. 어느 한 구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오가는 사람들이 좁은 길에서 맞닥트린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양보하고 한쪽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런 사이에 칼날처럼 섬뜩한 능선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은 자칫 수백 미터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 위태롭다. 다리에 힘을 주고 조심하며 앞을 보고 걷는다. 드디어 엔젤스 랜딩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곳은 넓지는 않지만, 바닥이 평평하여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든다. 정상 부근에는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경이로운 자이언 캐년 절경에 취한 듯하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서 조심스럽게 절벽 끝 지점까지 다가가 내려다보았다. 아침나절에 그 길을 지나쳐 왔던 굽이굽이 흐르는 버진 강과 들판이 보인다. 사람들이 작은 동물처럼 움직이고 차들은 장난감처럼 꼼지락거린다. 나는 있는 힘껏 양팔을 좌우로 뻗었다.

자이언 캐년이 내 품 안으로 들어온다. 그 순간, 자연이 빚은 웅장함과 세심한 숨결에 나의 심장 박동은 방망이질 친다. 이내 깊은 곳까지 닿았다 올라오며 ’휘 우우‘ 숨을 크게 내쉰다. 짜릿한 희열을 맛본다. 앤젤스 랜딩이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천사의 비호라도 받는 듯 절벽 구간을 스릴 있게 즐긴 한나절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계곡에서 불어온다. 나는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 이룬 기쁨에 덩실덩실 춤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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