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맛/장승욱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을 다섯 가지 맛, 즉 오미라고 한다. 수많은 맛들 가운데서 뽑힌 맛의 대표선수들인 것이다. 고소한 맛이나 떫은맛도 중요한 맛인데 순위에서 밀리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른 맛들은 다 붙여 쓰고 고소한 맛만 띄어쓴 것은 다른 맛들은 다 사전에 올림말(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고소한 맛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고소한 맛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면 고소한 맛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있을 테니까 꾹 눌러 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사전에서는 이런 맛들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을까. 떫은맛을 보기로 들어 보자. ‘떫은 맛 : 거세고 입 안이 부득부득한 맛. 날감 맛. 삽미(澁味).’이렇게 되어 있다(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제4판 특장판 771쪽에서 인용). ‘거세고 입 안이 부득부득한 맛가지고는 떫은맛이 설명이 안 되니까 뒤에 쉽게 이해하도록 날감 맛을 덧붙인 것이다. 이 사전에는 부득부득하다라는 말이 실려 있지 않기 때문에 더군다나 부득부득한 맛이 어떤 맛인지 알기가 어렵다. ‘하다가 붙을 수 없는 어찌씨 부득부득이 올림말에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득부득 우기다부득부득이기 때문에 맛과는 관계가 없다. 맛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서도 어떤 특정한 사물을 보기로 들어 풀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조금 길어졌다. 그래도 떫은맛은 알아듣기 어려우나마 설명을 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같은 사전에서 쓴맛을 보자. ‘쓴맛:금계랍이나 소태 따위의 맛과 같은 맛, 고미(苦味).’로 나와 있다. 보기로 든 것이 좀 어렵다. 소태는 그래도 좀 알 듯하지만 금계랍은 뭔가. 금계랍을 찾아보니염산퀴닌의 통속적인 이름이라고 나와 있는데, 염산퀴닌은 뭐고 통속적인 이름은 또 뭔가 말이다. 누구 데리고 장난하나, 라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 오른다. 반면 짠맛의 풀이는 아주 쉽게 되어 있다. ‘짠맛:소금 맛과 같은 맛,’그래 바로 이거야. 얼마나 간단하고 알기 쉬운가. 모름지기 사전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방송의 눈높이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나이에 맞춰져 있다고 하는데, 사전의 눈높이는 그보다 훨씬 낮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맛은 식초나 설익은 살구, 매운맛은 고추와 겨자, 단맛은 꿀, 고소한 맛은 볶은 참깨나 참기름과 같은 맛이라고 설명된다.

     

   음식이 입에 당기는 맛을 뜻하는 감칠맛도 소중한 맛이다. 감칠맛은 움직씨 감치다에서 비롯된 것인데, ‘감치다잊혀지지않고 늘 마음에 감돌다라는 뜻을 가진다. 감칠맛과 짝을 이루는 그림씨, 다시 말해 감칠맛을 표현하는 그림씨는 맛깔스럽다일 것이다. 맛깔은 맛의 빛깔, 곧 맛의 성질을 말하는 데, 음식 맛이 입에 맞거나 마음에 들 때 맛깔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맛은 맛이지만 음식과는 상관이 없는 맛들도 많다. 이성의 살에 살이 맞닿았을 대 느끼는 맛은 살맛이고, 암컷이 느끼는 수컷의 맛, 즉 수컷과 사귀는 재미는 수맛, 그 반대는 암맛이라고 한다. 촌맛은 시골에서 느끼는 맛, 시골의 장취를 가리키고, 돈맛은 돈을 모으는 재미나 돈을 모아서 쓰는 재미, 매맛은 매를 맞아 아픈 느낌을 말한다. 죽을 맛은 너무나 힘이 들어 고통스러운 맛이고, 된맛은 아주 고통스럽게 느끼는 호된 맛이다. “너 한번 맛 좀 볼래.”하고 으를 때, 그 보여주려는 맛이 된맛일 것이다. 싫다.

 

출처_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장승욱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