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색깔을 찾아서 / 공규택

 

   다행히도 우리말의 색깔 이름에는 유서 깊은 사연이 있어 흥미롭다. 그러면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해 온 색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밝은 불은 붉다

   먼저 붉다이다. 붉은색은 과 관련이 있다. ‘붉다+로 구성되는데, 어간에 해당하는 -’()’과 매우 깊이 관련 되어 있다. 우선 불의 색은 실제로 붉다. 또 불은 매우 밝기도 하다. 따라서 밝다과 밀접하다. ‘의 옛 표기가 이고, ‘밝다의 옛 표기는 ᄇᆞᆰ다이다. 정리하면, ‘에서 다양한 중성의 변화를 거쳐 밝다, 붉다가 파생되고, 현재의 이 된 것이다. ‘밝다붉다는 또 다양한 형용사를 파생시켰는데 발그레하다. 발그스름하다. 불그스름하다 등이 바로 그 낱말들이다.

 

해는 희다

   다음은 희다이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백의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흰색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 왔다. 흰색은 어디서 나온 말일까? ‘희다의 옛 표기는 ᄒᆞ이다. 어원을 살펴보면 ᄒᆞ>()’‘-가 붙어서 된 말이다. ‘는 한자어로 백일이라고도 하는데, ‘백일은 환한 대낮을 희미하기도 한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대낮에는 보통 희다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백주白晝 대낮이라는 말 역시 대낮을 하얗게 인식한 마라이다. 여러모로 판단하건데 우리가 말하는 흰색은 하얀 해에서 파생된 말이 분명하다. 우리가 해나 태양을 붉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풀은 푸르다

   세 번째는 푸르다이다. 우리말은 청색, 녹색, 남색, 연두색 등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고, ‘푸르다라는 한 가지 말로 두루 쓰고 있다. 그래서 나무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다. ‘푸르다는 원래 풀()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풀의 옛말은 이다. ‘-가 합쳐져 플다가 되었고, 음운이 분화되고 변화를 겪으면서 프르다를 거쳐 푸르다가 되었다. ‘은 다양한 물을 파생시켰다. 잎이나 꽃이 솟아날 때 쓰는 피다라는 동사나 풀을 세는 단위인 포기라는 명사도 에서 파생되었다.

 

눈을 감으니 검다

   네 번째는 검다이다. ‘검다는 어원이 불분명하다. 다만 우랄-알타이어계의 언어가 공통으로 가진 구무KUMU'’와 유사한 어형을 이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 붙어 검다가 된 것이고, 검다눈을 감다감다라는 동사를 파생시키기도 했다. 눈을 감으면 까매지니까 연관성이 있다. 한편 검정색이라고 할 때의 검정은 숯을 말한다. 지금도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숯을 검정이라고 부른다. 즉 숯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라매의 털은 보라이다

   다섯 번째는 보라이다. 보라색의 어원은 몽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옛날에 매사냥에 주로 쓰던 매 중에서 잘 알려진 것이 바로 보라매다. 보라매의 앞가슴에 난 털이 바로 보라색인데, 이 보라색이라는 이름은 몽골어 보로 boro에서 왔다. 앞가슴에 보라색 털이 나 있는 매를 일컫는 보라매라는 이름에서 따온 보라가 색깔을 가리키는 말로 전이되어 쓰이고 있다.

 

땅은 노랗다

   마지막으로 노랗다이다. 옛말 ()’에서 유래했다. 은 땅()의 뜻을 지닌다. 천자문에서 천지현황天地玄黃을 보면 땅()을 노랗게()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나라()’라는 말도 원래는 에서 파생되었는데, 은 바로 위의 에서 파생된 것이다. 나라라는 개념에는 이라는 개념이 녹아 있는 것이다. 사실 땅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혹자는 노란 빛을 띠는 놋그릇의 노랗다의 어원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누런 황금을 말하는 노다지-’아지가 붙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노랗다는 색 이름은 색에서 유래했다.

 

색깔은 눈에 보인다

   어원은 그 말이 생긴 당시로 직접 가 보기 전에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므로 현재의 시점에서 정답을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한가지 단정할 수 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색깔 이름이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사물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낱말의 형태가 많이 변형되어 한눈에 알아볼 수 는 없지만, 그 어원을 추적해 보면 불, , , , 매와 같이 당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시각적 대상들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