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다, 갈다, 치다
 
우리말 `가르치다`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 가르치다의 중세어는 `그르치다(이때 /ㅡ/는 모두 아래아를 대신하여 쓴 것)`인데 여기서의 `그르`는 가루를 뜻하는 말인 `글-그르(이때 /ㅡ/는 모두 아래아를 대신하여 쓴 것)`와 맥을 함께 한다고 풀이한다.

가루를 만드는 이치 그대로 문질러서 갈면 물건을 마음에 맞게 다듬을 수 있는 `갈(칼의 옛말)`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면 열매가 맺게 되고 사람을 갈면 미욱함을 슬기로움으로 갈게 할 수 있기도 하다.

`갈다`라는 중세어는 `말하다-이르다`는 뜻도 지니고 있었다. 남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마음밭을 갈고자 함이었음을 이 `갈다`라는 말은 말해 준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뜻을 갖는 `갈-그르`에 `치다`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 오늘날까지 쓰여 내려오는 `가르치다`이다. 훈몽자회에 育자를 칠 육, 養자를 칠 양이라 했듯이 `치다`는 `기르다`는 뜻을 갖는다. 오늘날 쓰이는 `치다`는 `양치기`, `소치는 아이` 하는 식으로 동식물에 국한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부모 봉양한다는 뜻으로 사람에게도 쓰였다.

`가르치다`의 `치다`에는 그렇게 사람의 정신을 양육한다는 뜻이 깃들여 있다. `갈고` `치고`하는 가르치다이니 겹겹으로 깊은 덕육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자면 뜻글자인 한자의 가르칠교敎자보다도 우리말 `가르치다`는 뜻이 더 깊다. 說文에 의할 때 이 敎자는 가볍게 두드려 주의를 줌과 앨서 배움을 합친 회의문자이다. 그렇다 할 때 우리말 `가르치다`의 깊은 뜻에는 미치지 못함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