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의 온도 / 신지영

 

   나른한 오후, 하지만 나른할 틈도 없이 연구실에 앉아서 마감에 몰린 일들을 하나하나 끝내려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 전화가 울린다. ‘누가 건 전화일까’ 하고 휴대 전화를 보니 반가운 분의 성함이 뜬다.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인사를 드리며 안부를 여쭈었다. 최근에 낸 책 한 권을 그분께 보내 드리려다 밖에 비가 와서 발송을 내일로 미루고 있던 차였는데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전화가 온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음성 기호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제안을 해 주시고자 전화를 주셨다. 전화해 주신 내용과 관련한 말씀을 한참 나눈 후,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필자의 근황을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책을 보내 드리고자 몇 자 적어 포장을 해 두었는데 마침 전화를 해 주셔서 놀랐다는 얘기부터 보내 드릴 책에 대한 내용과 최근 쓴 논문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아울러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호칭의 문제에 대해서도 한참 말씀을 나누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말씀을 듣게 되었다.

   호칭 앞에 이름을 붙이는 경우에 대한 것이었다. ‘신지영 교수님’과 ‘신 교수님’은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제자뻘이 되는 사람이 ‘신지영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괜찮지만, ‘신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씀이었다. 직장 상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호칭으로 ‘김 부장님’은 ‘님’을 붙였어도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하셨다. 상급자에게는 성만이 아니라 전체 이름에 호칭어를 붙여서 불러야 언어 예절에 맞는다는 말씀이었다. 혹시나 학생들이 이런 사실을 몰라서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강의 중에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다고 덧붙이셨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호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교수님과 필자 사이에 엄청난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화를 끊고 필자의 마음은 즐겁고 무거웠다.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음성 기호 관련 제안과 이와 관련한 학문적인 토론부터 실생활에서 마주하며 느낄 수 있는 호칭의 온도 차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오랜만에 너무나도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에 몹시 즐거웠다. 하지만 그간 필자가 별생각 없이 써 왔던 호칭 때문에 ‘혹시 누군가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셨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필자의 의도와는 달리 스승뻘이 되는 교수님들께 결례를 범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가 무심코 썼던 많은 전자 우편(이메일)의 시작이 X 교수님께, 혹은 X 선생님께였다는 데 생각이 미쳐서는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혹시 전화를 주셨던 그 교수님께 필자가 드렸던 전자 우편의 시작을 ‘X 교수님께’라고 한 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말씀을 나누다가 ‘X 교수님’이라고 부른 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물론, 걱정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말이다.

 

   ‘앞으로는 주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여전히 필자에게는 ‘X 교수님’과 ‘XXX 교수님’의 차이가 하대와 공대라는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X 교수님’보다 ‘XXX 교수님’은 훨씬 더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신지영 교수님’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더 거리가 있는 관계이거나 격식적인 상황이라고 느껴졌다. 반면에 필자를 ‘신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필자와의 관계는 더 친밀할 것 같고, 상황은 덜 격식적인 상황일 것 같았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니 학생들의 대부분은 필자를 그냥 ‘선생님’ 혹은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성이나 이름을 함께 부르는 일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교수님들께서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일까 궁금해져서 친하게 지내는 몇몇 교수님들께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자뻘 되는 사람이 교수님께 ‘X 교수님’이라고 부를 때와 ‘XXX 교수님’이라고 부를 때 다른 느낌을 받는지를 여쭈었다.

   연배가 필자와 비슷하거나 아래인 분들은 자신이 ‘X 교수님’이라고 불리든 ‘XXX 교수님’이라고 불리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이나 성을 부르는 일은 없는 것 같고, 그냥 ‘교수님’ 혹은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 같다고 하셨다. 성이나 이름을 앞에 붙이는 경우는 대부분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인 것 같다고 하셨다. 이때 안면이 있거나 친밀한 경우 성만 붙여 말하는 것 같고, 격식적인 장면이나 거리감이 있는 경우에는 이름 전체를 붙여 말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필자에게 전화를 주셨던 그 교수님과 연배가 같은, 그러니까 필자보다 열한 살이 많은 한 교수님께서는 필자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교수님들과 생각이 달랐다. 그 교수님께서는 필자에게 전화를 주셨던 교수님과 호칭에 대한 온도가 거의 비슷했다. 예를 들어 학과 교수 회의에서 연배가 제자뻘인 교수가 자신을 ‘X 교수님’이라고 하는 것이 처음에는 많이 불편했노라고 하셨다.

   필자는 이 말씀을 듣고 또 오싹해졌다. 연령 차이가 제법 나지만 필자와 친하게 지내는 교수님이었기 때문에 전자 우편을 보낼 때 ‘XXX 교수님께’보다는 ‘X 교수님께’라고 보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쭤 보았다. 필자가 교수님을 부를 때 자주 ‘X 교수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혹시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흥미로웠다.

 전혀 불편하지 않으셨다며 말투에서 다정함이 느껴지는데 뭐라고 부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거였다. 하지만 일부 후배 교수가 일부 장면에서 자신을 공대하기 싫어서 ‘X 교수님’이라고 일부러 부르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 교수님의 말씀처럼 호칭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호칭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에는 부르는 말이 무엇이든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만약 좋은 관계라면 부르는 말이 불편할 때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으니 그 불편함은 금방 해소될 수도 있다.

  

  문제는 관계를 시작하거나 맺어가는 과정에서의 호칭어 선택이다. 상대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하고, 말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불러야 한다. 그런데 한국어는 공손한 장면에서 2인칭 대명사의 사용을 꺼리는 특징을 지닌 몇 안 되는 언어에 속하는 데다가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린다. 그러니 별도의 호칭어가 필요한 언어적 특징이 있다. 게다가 한국어는 높임법이 발달한 언어다. 호칭어와 높임법은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화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 드러내는 특징을 지닌다. 호칭어로 발화가 시작되고 높임법으로 발화가 마무리되니 호칭어가 높임법을 이끄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니 만약 화자가 부르는 호칭어가 청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화자가 청자를 부르는 순간, 그 관계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금이 가게 된다. 관계가 겨우 시작되는 때이니 화자가 계산한 관계와 청자가 계산한 관계 사이에 큰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다면 어떤 호칭어를 선택해서 관계를 시작해야 할까? 그건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칭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쉬워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호칭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상대를 불러서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르는 순간 호칭어가 용수철이 되어 상대를 튕겨 나가게 한다면 대화는 이어질 수 없고, 관계는 맺어질 수 없다.

 결국, 어떤 호칭어를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소통과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통도 관계도 상호적인 것이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불리는 사람, 즉 청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즉, 어떤 호칭으로 불러 주면 좋을지 물어보는 것이다. 예의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상대에게 어떻게 불리는 것이 좋은지 먼저 묻고 시작한다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니, 호칭과 관련된 언어 예절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처럼 어떤 호칭어를 쓰는 것이 언어 예절에 맞다, 틀리다를 따질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하게 따져 봐야 할 언어 예절의 실체는 상대를 만나서 관계를 시작할 때, 상대가 어떤 호칭어로 불리고 싶은지, 혹은 내가 선택한 호칭어로 상대를 불러도 좋은지 상대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글: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