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가장자리, ‘마지막’은 맨 나중 것

 

  ‘유시자필유종(有始者必有終)’이라는 말도 있듯이, 처음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나 마지막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처음’의 상대어가 ‘끝’이 되기도 하고 ‘마지막’이 되기도 하는 이유는 무얼까. 두 낱말은 별다른 생각 없이 혼용되기도 하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반영하는 결정적인 차이가 숨어 있다.

 

  우선 ‘끝’은 한 덩어리로 된 사물의 가장자리, 또는 계속되던 것이 더 계속되지 않는 곳이나 때를 가리킨다. 반면 ‘마지막’은 여럿 또는 여러 번 가운데 맨 나중 것을 가리킨다. ‘끝’은 ‘붓끝’  ‘손끝’ ‘바늘끝’ ‘바다 끝’처럼 공간이나 사물에 주로 쓰이고, ‘마지막’은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 ‘마지막 열차’ ‘마지막 숨’처럼 되풀이되는 시간이나 순서에 쓰인다.

 

‘끝’은 종결이나 완성을 뜻한다

 

  ‘끝’에서는 계속되던 것, 쭉 이어지는 과정에 놓여 있던 것이라는 전제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까 더 이상 계속되거나 이어지지 않는 것이어야 온전하고 완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끝’이란 바로 어떤 사물이 완성된 지점을 가리키다. “망설이던 끝에 결론을 얻었다”고 하면 계속 망설이다가 망설이는 행위를 그만두고 어떤 결과를 얻어서 그 과정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성적이 끝에서 맴돈다”는 성적을 1등부터 꼴찌까지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여긴 데서 나온 표현이다.

 

  ‘끝’이 바늘이나 붓 같은 사물과 어울릴 때에는 길고 가느다란 물건이 가늘어지거나 좁아지는 쪽을 가리키고, 바다나 세상 같은 공간과 어울리면 그 한계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선언을 함축한다. 모름지기 사물이든 공간이든 ‘끝’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끝’이 과정이나 관계를 함축한 말과 어울리면, 계속 이어져오던 흐름이 멈추고 과정이 중단되거나 관계가 끊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봄의 끝이라기보다는 여름의 시작” “영화의 끝부분” 같은 표현에서 ‘끝’은 봄이나 영화의 종결 혹은 완성을 가리키고, “당신과의 연분도 이젠 이걸로 끝이에요”에서 ‘끝’은 관계의 중단 내지 단절을 의미한다.

 

‘마지막’은 반복을 전제로 한다

 

  이렇듯 ‘끝’은 어떤 과정이 ‘끝나는’ 지점을 가리키면서도, 그 과정이 연속성을 띠고 있다는 데에 초첨이 놓인다. 덧붙이자면, 한 과정이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종료되었느냐 그러지 못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에 비해 ‘마지막’에서는 똑같은 것이나 비슷한 것의 반복이라는 전제가 중요하다. 이 낱말은 과정이 아니라 횟수나 개수를 헤아리는 차원에서, 반복되는 다수 중 맨 나중 것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끝없는 방황’에서 보듯이 ‘끝’이 없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마지막’이 없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 중 맨 나중에 해당하는 잎으로, ‘인생의 마지막’이나 ‘마지막 인생’이 아니라 ‘인생의 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끝 곡’이 아니라 ‘마지막 곡’이다

 

  예를 들어 라이도방송의 음악프로그램에서 맨 나중에 내보내는 곡은 그날 준비해서 들려주려고 했던 여러 곡 가운데 최후의 것이므로 ‘끝 곡’이 아니라 ‘마지막 곡’이라고 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술자리를 했던 관계인데 어떤 사정으로 최후의 술자리를 맞이한 경우도 ‘마지막 술자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연사가 연설 말미에서 ‘끝으로… ’운운한다면 그때까지 계속되던 연설의 과정을 마치기 전에 맨 나중 부분을 언급하겠다는 뜻이 되는 반면, ‘마지막으로…’운운한다면 연설 내용에 나오는 여러 주제 가운데 최후의 것을 이야기하겠다는 뜻이 된다.

   

  ‘끝’이나 ‘마지막’의 상대어는 모두 ‘처음’이다. 그러나 이 두 낱말이 다른 낱말을 꾸며주는 말로 쓰일 때에는 ‘끝’의 상대어가 ‘처음’인 반면 ‘마지막’의 상대어는 ‘첫’이 된다. 그래서 ‘끝 곡’이 어색하게 들리는 것만큼이나 ‘처음 곡’도 부자연스럽다. 앞으로 라디오방송에서 ‘첫 곡’ ‘마지막 곡’이라고 정확히 표현하는 진행자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