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의 바다 / 손진숙
가을비가 부슬거리다가 그쳤다. 포항 송도 바다를 보려고 나와 있다. ‘평화平和의 여상女像’ 앞이다.
평화는 강건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걸까. 두 팔을 활짝 펴 올리고 월계수 가지를 받들고 있는 여인은 건강미가 넘친다. 안정감 있게 디딘 두 발, 오동보동한 장딴지와 허벅지, 배는 도도록하고 허리는 잘록하다. 겨드랑이를 들어 올리고 양손으로 치켜든 월계수 가지, 평화가 깃들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바닷가에 성난 파도가 들이친다. 거칠게 이는 파도 뒤로 바다 빛깔은 잿빛이다. 저 멀리 수평선 가까이는 파란 물빛이며 조개구름이 피어나 푸른 하늘을 회백색으로 덧칠하고 있다.
‘평화의 여상’ 사각 펜스 한 모서리의 솟대에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검은 날개를 접고 있는데 목부터 하얀 배는 살이 쪄 포동포동하다. 감시병처럼 응시하는 눈빛이 위엄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처량한 기색이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첫 바다를 만났던 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는 논밭이 펼쳐져 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촌이다. 바다를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실타래를 따라가 본다.
어느 해 더운 여름이었다.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계중에서 포항 송도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갔다. 뜻밖에도 나와 작은오빠와 남동생을 데리고 나섰다. 왜 어린 세 자녀와 함께 갔는지는 아리송하다. 자식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자상한 성품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른들은 천막을 치고 술잔을 기울이며 흥겨운 분위기였지만 나는 즐길 거리가 없었다. 오빠처럼 바닷물에 첨벙 뛰어들 용기도 없었고, 노란 바지를 입은 남동생처럼 이리저리 기웃댈 담력도 없었다. 내 존재의 미약함을 느끼며 미세한 모래알을 만져볼 뿐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과 넓이를 잴 수 없는 바다 끝 미지의 세계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한 번씩 천막 쪽을 바라보면 검게 그을리고 하루도 흙과 씨름하지 않는 날이 없는 농부들이 여가를 즐겼다. 언제 농사일에 파묻혀 있었느냐는 듯 밀짚모자를 쓰고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양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낯설면서 야릇한 아픔으로 비쳤다.
그 어른들도 모두 아득히 먼 나라로 떠나고, 포항 바다도 그때 여름 풍경을 재연할 수가 없다. 해안 경관이 변화하고 백사장의 유실로 아름다운 형태를 잃어가다가 해수욕장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2007년 폐장되었다. 해안가 모래처럼 수많았던 해수욕객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집어삼킨 바닷물은 철썩거리며 지나간 일화를 들려주는 것 같다.
내게 바다는 기쁨보다는 슬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예전, 짧은 동안 가깝게 지낸 친구가 있었다. 무척 좋아했지만 사정이 생겼는지 자꾸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경찰관인 것 같았는데, 그 친구 이름을 대며 아느냐고, 언제 만났느냐고 물었다. 만난 지 오래되었다고 하자, “그저께 실종되었다.”라고 했다.
그날부터, 나는 송도 바닷가에 있는 친구네 아파트를 주변을 배회했다. 놀이터에서 친구가 사는 창문을 지켜보았다. 1층 현관 앞에는 그 집 가족이 챙기지 못한 배달 우유가 여러 날 쌓여 있었다.
며칠이 지나서이던가. 지역신문에 짤막한 기사 몇 줄이 실렸다. 송도 바닷물 위에 실종자가 떠올랐다는.
바다는 물을 구분하지 않는다. 계곡물이든, 시냇물이든, 강물이든지. 심지어 하수구물이든, 웅덩이물이든, 시궁창물이든 구별 없이 받아들인다.
‘바다’는 ‘받아’라는 소리로도 들린다. 물만 가리지 않고 받은 게 아니라 살아있는 내 친구도 받았던 것이다. 바다의 온갖 수식어를 다 지우고 슬픈 바다가 된 연유이기도 하다.
포항 바다 송도해수욕장 인근에 북부해수욕장이 있다. 현재는 영일대해수욕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영일대해수욕장 부근이다. 거리는 바다와 가깝지만 마음은 동떨어지게 살았다.
모처럼 영일대해수욕장에 나가 모래사장을 걷는다. 바다도, 그 뒤 산도, 그 위 하늘도 전부 파랗다. 일희일비하며 붉으락푸르락하던 나를 돌아본다. 이제 슬픔도 기쁨도, 가리지 않고 받아 푸르게 정화시키는 저 바다의 넓은 품을 닮으며 살리라.
흰 갈매기 떼가 잔잔한 바다 위에서 군무群舞를 추기도 하고, 하늘 위를 날며 곡예를 하기도 하고, 모래 위에서 바장이며 먹이를 쪼기도 한다. 하늘에 떠 있던 새털구름조차 사라지고 없다. 온통 푸른 바다를 비추는 가을 햇살이 따사롭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