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유산, 되 / 이난영
찬장 깊숙이 보관하던 낡은 되를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47년 전 시어머님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다. 모서리는 둥글게 닳았고, 손때가 배어 색마저 바랬다. 나뭇결 사이사이엔 세월이 눌러붙어 있다. 귀퉁이마다 닳아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붙은 되를 보고 있으면 애잔하다.
웃풍 심한 단칸 셋방에서 첫 아이를 출산했다. 감기와 비염이 떠나지 않았다. 따뜻한 봄이 와도 코를 훌쩍거렸다. 친정엄마는 웃풍이 심해 그렇다며 조카들과 함께 살고 있는 방을 빼서 보탤 테니 아파트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마침, 미분양 주공아파트가 있어 계약하고 이사했다. 시어머님께서 와보시고는 당장 시골집을 정리하고 치매 걸린 할머님까지 모시고 나오겠다고 하셨다. 친정 오라버니에게 전세금을 받았다고 해도 무가내였다. 어머님의 힘듦을 이해한 친정엄마는 두말없이 양보하셨다.
이사 나올 때 아파트에는 장독도 필요 없으니, 최소한의 짐만 가져오라고 당부했다. 그래도 용달차 하나 정도는 될 줄 알았다. 택시를 대절해 싣고 온 이삿짐은 할머님과 어머님의 옷 보따리, 요강, 부라더미싱, 다듬잇돌, 낡은 되, 백동주전자, 놋그릇, 그리고 한두 가지 더 있었으나 기억나지 않는다.
정들었던 집과 살림살이는 집안일을 거들어주던 이웃에게 기부하고, 몸만 달랑 나오신 것이다. 시골에서 아들들 대학 보내느라 궁한 줄은 알았지만, 너무도 단출한 이삿짐이 가련했다. 대추나무로 만든 함지박 정도는 있으리라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어 보였다.
이 세상에 수많은 별 중 하나로 태어난 나, 무한한 우주 속 찰나의 존재이지만, 내 안에 흐르는 감정과 사랑만큼은 절대 작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지만,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와 첫 밤을 보내고, 새벽 문안 인사에 빚을 물려받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빚을 물려 준 것도 모자라 당신 아들 봉급날마다 월급봉투를 챙겨 가시는 어머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초라한 이삿짐을 보면서, 부잣집 따님이었던 어머님의 삶이 어쨌는지 알 수 있어 측은지심이 들었다. 고부간 씨실과 날줄이 되어 집안을 일으켜 세워보리라 다짐했다.
빚을 내게 넘겨주면서 어머님의 주름살은 펴지고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집안에서는 맏며느리를 잘 봐서 그렇다며 칭찬이 자자했다. 부러운 시선으로 어머님을 바라보는 집안 어른들을 보며, 내 자존감은 높아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집안의 화목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며 알뜰살뜰 모아 이층 양옥집을 구입했다. 이삿짐을 싸면서 낡은 되를 버리려고 했다. 깜짝 놀란 어머님은 당신에게 복을 준 ‘되’라며 두 팔을 내저었다.
그 ‘되’는 어머님이 직접 만든 것이란다. 시골에서 돈 나올 구멍은 없는데 아침마다 손 벌리는 자식들을 당할 재간이 없었단다.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잡곡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내다 파는 수밖에. 잡곡을 팔려면 되가 필요한데 되를 구입할 돈도 없어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그 되가 행운을 주었는지 가지고 나가는 곡식마다 잘 팔렸단다. 덕분에 아들은 무사히 대학교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간 데다 타고난 맏며느리까지 보았으니, 보배라고 하셨다.
되는 계량컵이 없던 시절, 흔한 도구였으나 어머니의 손에 들린 그 되에는 생존의 무게가 실려 있었지 싶다. 칠 남매의 학비와 학용품, 그리고 생활용품을 구입할 수 있는 든든한 물건으로 희망의 증표라고나 할까. 효용가치로 논할 수 없는 낡은 되, 어머님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귀한 물건이다.
어머님의 되는 욕심은 비우고, 고마운 마음만 채웠으리라. 살림살이는 빠듯하고 벌리는 손은 많아도 조금 덜 먹고, 덜 쓴다는 삶의 원칙으로 덜어내지 않고, 눈금은 늘 그대로였을 것이다. 참깨, 찹쌀, 서리태, 팥, 녹두, 수수 등 잡곡만 판 것이 아니라 정(情)도 팔았을 것이다. 그 정은 당신을 일으켜 세우고, 자존심을 지켜줬을 것이다.
다 닳아 모서리가 마모된 낡은 되는 처음부터 내게 필요치 않았다. 아주 낡아 쌀을 뜨면 밥에 나무 찌꺼기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어 사용할 수 없었다. 쓸모없고 보잘 것 없었으나 어머님의 삶을 소중히 지켜드리고 싶어 고이 간직해왔다. 쌀을 재지 않아도 삶을 재는 기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더 가져도 되는지,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고민할 때마다 나는 그 되를 떠올린다. 과함도 모자람도 없이 살아가라는 무언의 가르침이 그 안에 담겨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게 “타고난 맏며느리”라는 멍에를 씌워주었으나 유품을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여겼다.
낡은 되를 바라보면서 유산이란 꼭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가 남긴 것은 낡은 되가 아니라, 삶의 눈금이었다. 닳아도 사라지지 않는 절제, 나누되 계산하지 않는 마음, 삶을 대하는 태도, 욕심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 등. 오늘도 나는 그 낡은 되를 바라보며, 하루의 분량을 조심스레 잰다. 어머니의 방식으로 세상을 조금은 더 단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