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소파 / 안애정

 

소파 하나가 정류장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 버리고 간 거겠죠. 아니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쉬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 갖다 놓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고,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누구도 그 소파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냥 지나쳐 갔으니까요. 자가용 타고 다니는 제가 그 정류장에 서 있을 이유도 없었지만, 우리 집에는 더 크고 좋은 소파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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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다시 그 정류장 앞을 지나가다가 그 소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밝은 햇빛 아래에서 소파의 붉은 색은 더 선명했어요. 갑자기 소파가 당신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는 가족들이 모이는 거실 한가운데 있었을 소파처럼 저를 비롯하여 우리 가족의 중심이었던 당신 모습이 떠오르자 무엇에 홀린 듯이 저는 자동차에서 내려 소파를 향해 걸어갔어요. 그리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소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오른손으로 소파의 곡선을 따라 가죽을 만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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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가죽 소파는 여기저기 갈라진 자국이 뚜렷했습니다. 실핏줄이 지나가는 우리의 몸을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붉은 소파는 갈라진 하얀 실선이 자신이 소파로 존재했던 날들의 흔적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어요. 마치 노인의 얼굴에 생긴 주름처럼. 순간 당신 얼굴이 생각났어요. 웃을 때면 부챗살처럼 퍼져갔던 눈주름이, 올라갔던 입꼬리에 잡히던 주름 같았습니다. 생전에 당신의 웃음소리는 호탕했었지요. 그래서 어디에서건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인간관계 또한 원만하셨습니다. 더러 부부싸움을 한 친구에게는 술 한잔 대접하며 기분을 전환해 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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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를 머금은 소파의 쿠션은 꺼져 있었어요. 푹 파인 자국은 마치 오래도록 누군가의 등을 지탱했던 흔적 같았습니다. 무심코 당신의 등이 생각났어요. 또래보다 키가 커서 일부러 구부정하게 다녔다는 그 굽은 등, 농사철이면 한 번도 펴고 산 적 없었던 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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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직장 생활에 지쳐 휴일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집을 끼고 있는 돌담을 돌아 대문에 들어서는데 평상 위에 누워있는 당신의 등이 보였어요. 아침나절 일하고 돌아오면 피로가 몰려오면 전신이 나른해지기 마련이지요. 나른함을 못 이겨 곤히 잠드신 당신의 등을 보면서 무언가 가슴을 짓눌렀던 기억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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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면 달려가서 당신 옆에 앉아 “아버지”하고 불렀을 텐데, 그때는 평상에서 새우처럼 굽은 등을 더 굽히고 옆으로 누워 잠든 모습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불쑥 내뱉었지요. 왜 이런 데서 잠을 자냐고, 방으로 들어가셔서 주무시라고 목소릴 높였습니다. 잠결인데도 제 앙칼진 목소리에 놀라 깨셨지만, 당신은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벌리며 저의 이름을 부르셨어요.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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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왜 그토록 무심했을까요. 왜 늘 제 마음만 중요하게 여겼을까요. 왜 당신이 건네던 말들을 흘려들었을까요. 이제야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따금 꿈에서라도 뵐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이런 소망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아 저의 자책은 더 커졌습니다. 그리곤 이제야 낡은 소파를 바라보며 당신을 떠올리는 어리석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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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소파처럼 아버지는 늘 저를 기다렸지요. 제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자리를 내주었고, 제가 제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방황할 때도 침묵으로 모든 어려움이 지나가길 기다리셨지요. 별일 아닌 것처럼 버려진 소파가 제 마음을 온통 흔들며 회한의 뼈저린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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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다시 정류장을 찾았을 때 소파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허전했어요.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집 안 중심에서 묵묵히 앉아 계셨던 당신의 형상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소파가 놓였던 그 자리에 서서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제가 세 아이 어미가 되어 자식을 기르면서 비로소 제 뿌리는 당신이었고, 그게 인생 유전임을 깨달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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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으로 들어와 소파가 놓였던 자리를 바라다보며 제가 힘들어할 때면 말없이 바라보던 당신의 고요한 눈길을 생각했습니다. 말보다 묵언으로 삶의 교훈을 깨우쳐 주시고, 당신은 궁핍해도 자식들에게 먹을 것만은 넉넉히 챙겨주시던 아버지! 그 모습이 떠올라 핸들에 이마를 대고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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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제 하늘나라 어디에 계시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된 농사일로, 가족을 위해 평생 굽은 등 세우지 못했던 척추를 곧게 펴고 편안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등을 받쳐주는 소파처럼, 그 자리가 푹신하고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하늘나라에서 평화를 누리며 지내실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하는 딸의 기도를 접수해 주십시오. 꿈에서도 그리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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