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도에서는 / 김예은 - 제11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종합병원 복도를 오래 서성거리다 보면 / 누구나 울음의 감별사가 된다’

대학생 때 처음 적어놓았지만 의사가 되고 나서야 자주 꺼내어보는, 나희덕 시인의 ‘이 복도에서는’ 이라는 시 첫 연이다. 병원에서 울음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죽음에 대한 어떤 울음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감별사가 되더라는 이야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감별사가 되기에 ?내가 아직까지 들은 울음소리는 턱없이 적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마음 깊이 가라앉혀 놓았을 죽음에 대한 감정들이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꿈틀거리는 느낌에 자꾸 찾아 읽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이 시의 끝은 다음과 같은 연으로 마무리가 된다.

 

‘마른 시냇물처럼 오래 흘러온 / 이 울음의 야적장에서는 누구도 그 무게를 달지 않는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의 ‘울음의 야적장’은 중환자실과 수술실이 마주보고 있는 2층 복도가 가장 맞을 것이다. 병원 안 세상도 이미 병원 밖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 있지만, 10층까지의 복도 중에서도 이 2층 복도를 지나다보면 병원 안에서조차 따로 분리되어버리는 느낌에 휩싸일 때가 있다. 두 손을 꼭 쥔채 기도하는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흐느끼는 사람들, 크게 울음을 뱉어내는 사람들, 뜨겁게 울음을 삼키는 사람들, 울다 지쳐서 멍하니 주저앉은 사람들…. 앞만 보고 걸어도 내 시야에 그들이 들어오면, 혼자 흰 가운 입은 이방인이 되어 그들의 세상을 건너가는 느낌이 든다. 그 복도를 지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이 병원은 내 흰 가운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내 공간 같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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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선고를 내리는 상황 속에 있어본 적이 여태 총 다섯 번뿐인, 나는 아직 의사선생님이란 말보다 인턴선생님이란 호칭이 더 익숙한 새내기 의사다. 그래서인지 불편하고 아직은 낯선 감정들은 소화되지 않은 채 마음대로 다시 꺼내어지곤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신경외과를 돌 때 느꼈던 일이다. 새벽 1시가 되어갈 무렵, 쌓였던 일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나가려던 참인데 간호사분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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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곧 돌아가실 환자 한 분이 계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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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환자가 생기면 내가 중심정맥관과 동맥 주사바늘을 빼야 하기 때문에 숙소에 가도 금방 다시 와야 될거라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돌아가실 예정이라는 그 환자는 지주막하출혈로 혼수상태였고 이제 60대에 접어드는 연세인데, 이미 몇 차례 심정지로 여러 번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후에도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여 DNR(심폐소생술 금지) 동의가 된 상황이었다. 점점 심박수와 혈압이 떨어져가는 상황이며 보호자도 밖에서 대기중이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내일 수술할 환자들의 상태나 더 보고 있자는 마음으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뭔지 표현하기는 힘들게끔 기분이 점점 이상해졌다. 마치 잠이 안 올 때처럼 1초, 1초 흐르는 게 예민하게 느껴지면서 그 시간들이 무겁게 어깨를 누르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또 내려오기 귀찮으니까 다 끝내고 갈 생각만으로 앉았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그 환자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는 환자였지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는 데에 내가 나쁜 의사처럼 느껴지며 무력감과 허무함이 덮쳤다. 그 환자분이 더 빨리 돌아가실수록 내가 그만큼 일찍 숙소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상황 자체도 썩 기분이 별로였다. 그런 복잡한 감정 속에서 차라리 잠들길 바라며 엎드려 있는데 사망선고는 생각보다 일찍 내려졌다. 곧 그 환자의 아내분이 오열하는 소리가, 영원한 이별이라는 죽음 자체가 가슴 깊이에서부터 끌어오는 울음이 중환자실의 새벽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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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소생가능성이 희박함을 ‘인정’하고 대처를 하는 것도 분명 의료의 중요한 부분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보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건, 이유야 어쨌든 그 결과가 죽음이라면 내게 보호자들을 더 위로해줄 수 있는 도구는 없기 때문이다. 환자를 편하게 보내드리는 게 나은 것인지 소생가능성 평가가 내 의료적인 선택에 있어서는 중요하고 위로가 되는 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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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초 나도 할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 설에 뵈었을 때 다리 함요부종이 심하시길래 이뇨제 드셔봐야지 않겠냐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고 내가 첫 응급실 근무에 적응하느라 매일 정신이 없던 즈음에 요양병원에 가셨단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는 자궁암 말기이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기엔 연세가 많고 늦은 상황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가로막고 의료적 처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걸 머리로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위로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점점 더 안 좋아지시는 모습을 보며 내 이름 앞에 의사라는 두 글자가 슬프고 무거웠다. 응급실 근무 중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영정 앞에 선 날, 나는 물에 푹 적신 수건처럼 가슴을 쥐어짜내며 울었다. 가족도 아닌 환자들의 작은 상처까지 다 봐주면서 막상 할머니 앞엔 의사손녀가 아닌 그냥 손녀로 서게 된 내 모습에 서러움이 더 북받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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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라도 해드렸었더라면 마음이 덜 아플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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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면서 지켜보는 일이 어쩌면 아픈 사람보다도 더 아프고 괴로운 일이다. 그 괴로운 일을 매일같이 겪고 있는 게 환자의 보호자들이라는 걸, 환자들 곁에서 부담이라도 덜 주고 기운내라고 웃는 그들 앞에서 자꾸 잊게 되곤 한다. 환자가 아프다고 할 때 우리는 진찰도 하고 처방도 낼 수 있지만, 환자 대신 아파주기라도 하고 싶을 보호자들은 정작 우리를 부르고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지켜보고 기다리는 일이 병원에서 그들의 매일인 것이다. 그걸 생각해보니 유난히 예민하고 극성스러운 보호자들이 그만큼 더 의사에게만 기대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응급실을 돌면서도 환자와 보호자가 의사에게 화를 낼 때 그건 불신보다는 불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느꼈다.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을 때에 서운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자꾸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들이 나를 왜 믿지 못할까가 아니라 얼마나 내게 신체적, 심리적으로 기대고 있을까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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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에게 무언가라도 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의사라서 가질 수 있는 기쁨이자 자기위로의 기회이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치료를 해볼 능력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지, 할 수 없어지면 그 땐 우리도 보호자들처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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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원님, 7번 베드 정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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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망선고가 내려진 환자의 몸에 꽂힌 바늘들을 다 빼고 지혈된 것까지 확인하자 간호사가 다음 일을 진행했다. 그 환자의 자리는 금방 그렇게 다음 환자를 위한 자리가 되었다. 중환자실을 나서 2층 복도에서니 수술실 대기 공간 근처에서 아내분의 울음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 울음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말 것 /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 걸어갈 것’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이 울음의 야적장에서는 누구도 그 무게를 달지 않는다. 이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울고 싶을 만큼 편하게 울 수 있도록 아무 소리도 듣지 않은 것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보내야 할 땐 보내야 하지만 울어야 하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만큼 보호자들과 함께 아플 수도 있는 의사가 될 수 있기를. 어쩌면 이 복도에서는 불편한 마음을 떨쳐낼 게 아니라 이 시를 꺼내어보듯이 자주 꺼내고 만져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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