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빛이다 / 나희덕

 

아무도 따가지 않은

꽃 사과야,

너도 나처럼 빚 갚으며 살고 있구나.

햇살과 바람에 붉은 살 도로 내주며

겨우내 매달려 시들어 가는구나.

​

월급타서 빚 갚고

퇴직금 타서 빚 갚고

그러고도 빚이 남아 있다는게

오늘은 왠일인지 마음 놓인다.

​

빚도 오래 두고 갚다보면

빛이 된다는 걸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는 건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걸

너는 알겠지,

사과가 되지 못한 꽃사과야.

​

그러고도 못다 갚으면

제 마른 육신을 남겨두고 가면 되지.

저기 좀 봐, 꽃 사과야.

하늘에 빚진 새가 날아가고 있어.

언덕에 빚진 눈이

조금씩 조금씩 녹아 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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