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 위엔 저 푸른 하늘이 / 유안진

 

 

  소금쟁이 어우러져 희롱하는 물웅덩이 속에 뭉개구름 데불고 가장 자비하신

신(神)의 얼굴이 잠겨있다. 여름하늘이다. 인간세상 제일로 가까운 거리에 와 계신 

신의 얼굴, 바람 없는 날 호수의 수면 같은 물빛 여름하늘에는 폭군의 무자비한

폭정과도 같은 나의 증오와 원망이 스며든다. 길길이 타오르는 불같은 회한과 수치도 

스미어든다. 불타는 돌 지갈밭에 목을 꺽고 늘어진 이름 없는 풀포기가 외치는 

소리없는 아우성도 스미어든다. 한 자락 그늘도 없이 맨몸으로 받아내는 뙤약볕의 열기, 

못 견딜 일을 견디고 버티어야 하는 황소의 기인 울음, 그 원망도 탄식도 빨려들고 있다.

시방 산허리에는 숨찬 기차의 외마디 소리, 힘겨운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외침이 

여름하늘에 울리어든다. 푸르름의 무게로 깊이 내려앉은 계절, 그 무성한 수풀, 청년의

열정과, 청년의 사랑,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청년의 사명으로 고뇌하는 삼손의 

더벅머리, 그 고뇌도 여름하늘에 잠기어든다.

 

  끝없는 가능성과, 무한한 신뢰를 쏟아 사랑한 강물의 도도함도 결국 여름 하늘로 흐른다. 

찔레덤불 가시더미 속에 맨살로 가시둥지를 쓸어 안고 꼬리 트는 배암의 부드러운 마음도 

하늘은 안다. 천지 캄캄 덮이는 먹장구름, 벼락치는 번개와 빗발 앞에 쓰러지고 찟기우는 

풀잎도 여름하늘은 다 알고 있다. 밤마다 울어대는 소쩍새의 소태울음, 참으로 타인의 영광에

그늘지어 사는 소쩍새의 소태울음도 여름하늘에 스미어든다. 고샅까지 가득한 무논의 

개구리 울음, 풀섶의 배짱이, 여치가 돌아눕는 소리마저도 하늘에 닿는다. 그래서 여름 하늘에는 

여울 따라 은하수 잔별떼가 흐르고, 초롱 초롱 눈동자 영롱한 별무리가 반짝인다. 

 

  여름 하늘은 행복한 자의 머리 위에 있지 않다. 힘겹게 살며, 우는 자가 이고 사는 하늘이다.

긴 장마처럼 오래 우는 자, 장마비처럼 땀을 동이 동이 흘리는 자의 머리 위에 뜨는 하늘. 진실로

가을하늘이 그처럼 드높고 푸르고 유리알처럼 드맑기 위해서는, 여름하늘처럼 가슴 쳐 아파 

우는 천둥과 번개, 또 소나기의 아픔을 견디어야 했으리라. 사랑과 원망과 울부짖음과 분노로 

피범벅이 된 한 시절을 잘도 갈무리한 다음, 저 드맑은 가을하늘, 성모님의 옷자락과, 수도녀의

눈빛 같은 세계가 열리어짐이 아니랴. 진실로 가을이란 계절이 그토록 사려 깊고 조용하고 

철들기 위해서는 여름철 같은 울부짖고 고뇌하며 땀 흘리고 견디는 수난의 지난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여름하늘 아래서는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밭두렁에 올라서서 조용히 두 손 모으는

 농부의 아낙이 되고 싶다. 그녀가 머리에 쓴 때묻은 머릿수건빛 여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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