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것들이 뾰족해지는 시간 / 남태희
바싹 마른 미역이 손가락을 찔렀다. 뾰족한 검은 미역 조각을 빼내자 핏물이 몽글 맺힌다. 손가락을 입속으로 가져가 핏물을 빨아 뱉는다. 무슨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것인지 상상도 못한 일에 신경이 곤두서고 마음이 뒤죽박죽이 된다. 고향친구가 남해 바닷가에서 걷어 말린 미역은 햇볕에 제 몸을 너무 말렸나보다. 몸의 수분을 얼마나 말렸으면 이렇게 빳빳해져 가시로 태어났을까.
살다보면 자신이 온통 가시투성이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복어 몸처럼 몸 안 가득 독을 머금고 온몸에 가시를 세운다. 그런 밤이면 불면으로 뒤척이며 평상심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자책하게 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도 자꾸 마음을 다치다보면 다친 상처자리에 씨눈이 달렸는지 뾰족한 가시의 싹이 돋아난다.
요즘 경제가 좋지 않다.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부동산은 그동안의 급등의 반작용과 각종 조세제도나 고금리의 영향으로 매수의향의 고객을 맞이하기가 드물다. 이런 시국에 진성고객을 만났으니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울며 겨자 먹기로 내놓은 급매물을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깎아 달라 요구한다. 매도자는 기간 내에 팔지 못하면 세금으로 다 토해내야 되기 때문인지 힘겨루기에 실패하고 금액을 조정한다. 잔금 날까지 정해지고 계약금의 일부를 송금하라고 하자 조짐이 좋지 않다. 최종적인 답을 주겠다더니 매수자는 감감무소식, 기다리는 시간이 피를 말린다.
오후 늦은 시간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건다. 다행히 통화가 되자 그녀는 계약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집을 계약하려던 사람이 계약을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다. 분명 계약이 되었다며 그 집 잔금 날에 맞추어 날을 정했는데 계약이 취소되었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찜찜한 마음 금할 수 없으나 다시 계약이 진행되면 꼭 연락하겠다는 말까지 하는데 사람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네이버 광고에서 매물이 거래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온다. 동일물건이 거래 완료되었으니 광고를 내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느 부동산인지 모르지만 계약을 했다는 뜻이 된다.
서둘러 매도자에게 전화를 하니 거래된 게 맞다 한다. 잔금일과 금액이 같은 걸 보니 같은 사람 같다하니 우물쭈물 말끝을 흐린다. 예감은 잘 틀리지 않는다. 즉시 새댁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는 것을 보니 뭔가 켕긴다는 뜻이다. 연속으로 계속 전화를 하다 문자를 남긴다. 같은 집을 계약한 것 같은데 실컷 조정하라하고 딴 곳에서 계약을 하는 경우는 무슨 경우냐며 서둘러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어차피 이사 오면 한동네서 얼굴보고 살아야 하는데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메시지는 참담한 마음을 숨긴 인내였다.
새댁 역시 부끄러움을 알아서 전화는 못한 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매매한 부동산에서 자신과 들어갈 집도 거래하면 수수료를 싸게 해주겠다하여 이 동네에 있는 다른 부동산과 공동으로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같은 업을 하는 부동산에서 한 행동도 어이가 없고 새댁의 조건에 맞추어 열심히 가격을 절충하느라 애쓴 걸 뻔히 알면서 몇 일간의 수고를 엎어버리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전화를 해서 수수료를 절충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든지, 자신의 집을 계약하는 부동산더러 알아본 부동산과 공동을 하는 게 맞지 않겠냐고 해서 손해를 줄여주든지 해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았다.
살다보면 부드러운 것들에 찔리고 베이는 순간이 있다. 얇은 새 책에 손이 베이고 매끈한 줄 알았던 마루 결에 가시가 박히고 오늘처럼 마른 미역줄기에 찔리기도 한다. 감히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지면 더욱 놀라고 당황스럽다. 한때는 부드러운 것들, 보드랍던 것들이 왜 어느 순간 날카로운 도구가 되어 돌아오는 것일까. 챠르르 넘어가는 한 권의 책, 한 장의 종이가 손가락을 베고 말캉하니 보드랍던 미역줄기가 어느새 손가락을 찌른다. 잘 닦여진 마루결인 줄 알았는데 역으로 일어난 결이 있었는지 어느 날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 절절 맨 적이 있다.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 탓일까. 좀 더 신뢰감을 주지 못한 탓일까. 이런저런 원인들을 자신에게서 찾으며 불린 미역의 물기를 짜낸다. 일을 하면서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복작거린다. 참기름 한번 휘둘러 쇠고기를 복복 볶아내다 쌀뜨물을 붓는다. 노름한 기름이 국물위에 떠오르는데 이해하자는 머리와 괘심하다는 가슴이 달리 반응하는 지금의 나를 닮았다.
센 불에 미역을 끓이다 불길을 줄인다. 시간이 지나면 풀썩거리며 끓어대던 미역국처럼 숨이 조금 죽어갈까. 뭉근히 끓이다 보면 이파리는 물론 미역줄기까지도 노골해지지 않던가. 뽀얗게 우러난 미역국 한 그릇처럼 순해지고 부드러워지는 데는 자정과 뜸들임의 시간들이 필요한 법이다.
새 책도 사람의 손길의 횟수에 따라 조금씩 자신의 빳빳한 심지를 죽여 간다. 그것이 새 책이 헌책이 되어가는 자긍심이다. 많이 읽혔다는 증거이니 새것의 아름다운 외양보다 여러 사람의 손길이 지나간 모서리가 나덜해진 모습이 더 값져 보이는 법이다.
고택의 마루 결이 단정하지만 역방향의 결이 하나 일어난 것은 마음을 다해 걸레질하고 기름칠해야하는 것이 마루판 뿐만은 아님을 경고한 무언의 가르침은 아니었을까. 올올이 드러난, 골골이 숨겨진 혈맥 같은 나무의 올곧음, 수분과 유분을 모두 말리고 수도승처럼 한 장의 마루판으로 묵언수행중임을 이제야 읽어낸다.
빳빳한 한줄기의 미역이 한 그릇의 미역국으로 탄생한다. 부드러운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상처를 주던 미역줄기가 뽀얗게 우러나 마음을 다독이는 한 그릇의 음식이 되기도 한다. 서로가 상처를 주는 줄 모르고 한 행동도 있고 알고도 한 푼의 이익이 앞서한 행동도 있을 것이다. 새댁만을 욕할 게 아니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준 아픔들이 없는지 들여다보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믿었던 것들의 배신은 아프다. 하지만 내 마음이 더 이상 시들어 말라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흉기가 되면 안 되는 일이다. 이래저래 실컷 고아지다 보면 뭉근한 한마디 웃으며 툭 뱉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려나. 한 그릇의 미역국을 먹으며 내 속에 든 가시를 힘껏 밀어내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