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록 거울이 있는 방 / 고경서
화병에 꽂아둔 아이리스
갈까마귀 떼울음이 책상에서 시든다
검은 사각으로 감싼 방
조도 낮은 거울 속엔
버지니아 울프가 뒷모습으로 앉아 있다
입술로 말하는 책들
왜곡된 욕망이 페이지마다 얼비친다
암막 커튼 틈새로 본 새들의 발자국
저 바닥의 허기를 깨워야 한다
끓는 피를 식히는 선율을 잠재우고
엘피판은 음역대를 오르내리며
물비린내 잠긴 그녀를 휘감아 돈다
표정 없는 이니셜이 심장에 불을 켜고
판막증 앓는 일상을 움켜쥔다
한 권의 생애를 탐독하던 그녀
수만 송이 꽃으로 피어난 페미니즘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레테의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격류에 침몰하고 만 허공
바람 무늬로 일렁이는 밀서를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