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서 만든 지폐 / 곽흥렬
가짜 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치기 어린 장난질을 해 본 사람은 알리라, 그것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 일인가를. 거기엔, 돈도 돈이지만 그보다는 세상을 상대로 꾸민 속임수가 통했다는 묘한 성취감 같은 것도 한몫하고 있을 법하다.
그 짜릿한 쾌감 때문일까, 위조지폐로 세상을 어지럽히다 결국 덜미가 잡혀 새장에 갇힌 노고지리 신세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뉴스거리로 오르는 것을 본다. 그들은 컬러복사기나 컴퓨터 스캐너 같은 첨단기기를 이용하여 감쪽같이 진폐眞幣를 본떠낸다. 하도 정교하여 감식 전문가들조차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할 수 없을 정도라니 그 솜씨를 미루어 알 만하다.
죗값만 따지고 들지 않는다면, 그들은 분명 손재간 하나로 큰 상을 받을 만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리 좋은 재주를 밝은 세상 만드는 일에 사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보탬이 될 것인가. 한데 보탬은커녕 오히려 상처 자국만 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물인데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어 나오지만 뱀이 마시면 독을 뿜어낸다. 이처럼 똑같은 재주일지라도 쓰기에 따라서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일이 우리 사는 세상사에서 흔히 생겨나는 것이다.
J 아무개란 위인이 있었다. 유독 고관대작의 집만을 골라서 털고 절대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도둑질 철학으로 삼아 소외받은 이들로부터 은근한 추앙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털어서 불안한 도둑은 작은 도둑이고 털려서 불안한 도둑이 큰 도둑이다.” 하는 그럴싸한 말로 ‘대도大盜’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가진 자가 행세하는 세상에 대해 아낌없이 조소를 퍼부었다. 그러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천부의 비범함으로 세상을 발칵 들쑤셔 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꼬리가 밟혀 절도죄로는 최고형인 15년형을 언도 받고 차가운 독방 신세를 진다. 그 후 형기刑期를 거의 채워 갈 무렵, 특별 가석방된 후 한 도난 방지 회사의 일급 자문역諮問役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그의 타고난 도둑질 실력을 회사 측이 높이 산 결과다. 말하자면 그 방면에 있어서 그가 지닌 탁월한 노하우를 역으로 십분 활용해도 괜찮겠다는 회사 나름의 계산서가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은 재능일지라도 쓰기에 따라서는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그 차이란 실로 종이 한 장의 경계에 불과하다. 소 잔등을 다투는 여름 소나기처럼, 범죄인이 되느냐 범죄를 막는 의인이 되느냐의 여부는 마음 한번 어떻게 먹는가에 달린 셈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상당한 의미로 다가온다. 세 번에 걸친 탈옥으로 세상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흉악범 S 아무개, 그를 그 지경까지 몰고 간 것은 애초 고작 라면 몇 봉지 때문이었다. 그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지독한 가난 때문에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동네 구멍가게에 몰래 들어가 물건에다 손을 대었고, 어쩌다 주인한테 들켜 마침내 소년원 신세를 진다. 이것이 희대의 탈주범脫走犯을 만든 단초가 되고 말았다. 너그럽게 보아 넘기면 딱히 죄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그 죄의 대가는, 결국 그의 삶의 물꼬를 불행 쪽으로 트는 결정적인 갈림길로 작용한 것이다.
가게 주인의 병아리 눈물만 한 배려만 있었던들 오늘의 S 아무개 같은 위인은 생겨나지 않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신출귀몰한 탈옥 솜씨를 바람직한 쪽으로 살렸더라면, 그는 우리 사는 세상에 커다란 기여를 할 착실한 재목材木으로 자라날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 안타까운 사연을 더듬고 있으려니, 열두어 살 어린 날의 사연 한 토막이 망막의 스크린에 그려진다. 그때는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죄가 되는지조차 모르던 나이였었다. 분별없이 천방지축이던 개구쟁이였기 때문이리라.
삼시 세끼의 주식主食조차 넉넉지 못했던 지난 시절, 보릿고개 넘기가 태산 넘기보다 힘에 겨웠던 당시로서는 요즘이야 흔전만전인 군것질감을 바란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비록 조악한 과자며 빵이며 눈깔사탕 같은 먹을거리들이 있긴 하더라도, 모두가 땡전 한 닢 가진 게 없는 썰렁한 주머니들이었으니…….
겨울밤은 또 어찌 그리도 길던가. 어느 집의 사랑방 아랫목에다 발을 포개고 둘러앉은 또래들은 궁금한 입을 달랠 묘안을 짜내기 시작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온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보자 보자 하며 끙끙거린 끝에 누군가 탁 무릎을 쳤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군것질할 돈을 한번 만들어 보자.” 하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말에 한입으로 찬동의 마음을 모았다. 뒷일 같은 건 꿈에도 살피지 않았다. 아니, 아예 살필 깜냥들이 못 되었다는 말이 오히려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철 지난 달력을 가져왔고, 십 원짜리-그때 당시는 십 원짜리도 종이돈이었다-크기만 하게 잘랐다. 거기에다 지전의 도안을 본뜬 그림을 그려 넣고 색을 입혔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낸 일이었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론 설레기도 했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 지폐 아닌 지폐를 호주머니에다 구겨 넣고는 마을 앞 동구 밖에 위치한 구멍가게로 향했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은 아이들이 누구누구였는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기억의 필름으로 되살려낼 수가 없지만, 어쨌든 그 가운데 내가 끼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주인이 그날 밤 우리에게 던졌던 한마디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장면처럼 뇌리에 또렷이 녹화되어 있으니.
“아, 이걸 어쩐다지. 한쪽이 그만 불에 그을려버렸구나. 원래는 안 되지만, 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으니 반값만 쳐준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진열대에 놓여 있던 과자랑 사탕이랑 빵이랑 이것저것을 골라 누런 종이봉지에 하나 가득 담아 주었다. 그림을 그려 넣을 때 누군가 한쪽을 너무 새까맣게 칠했던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던 것 같다. 아니, 아니다. 아마도 그 가게 주인은 벌써 눈칠 채고 있었으면서도 우리가 무안해할까 봐 짐짓 모르는 척하고 둘러댈 핑계를 그렇게 찾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모양새며 색채가 너무도 조잡했기에, 삼척동자가 봐도 그게 지폐가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어쩌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한편으론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짜릿하게 오금이 저려 온다.
자신이 저지른 한순간의 잘못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잊지 못해 먼 훗날 그 수십 갑절의 돈을 소액환으로 끊어서 경찰서로 보내왔다는, 성공한 어느 회사 사장의 사연을 전해 들은 기억이 새롭다. 설사 요행히 발각이 되진 않았다 할지라도 평생토록 그 죄책감을 가슴 한구석에 묻은 채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양심에 가시로 박혀 그를 올곧은 인격체로 이끄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린 가슴에 난 생채기는 쉽사리 아물지 아니하는 법이다. 만일 그때 그 가게 주인이 훈풍처럼 따스한 마음 씀씀이로 우리의 등을 쓰다듬어 주지 않았더라면, 탈옥수 S 아무개의 라면 사건처럼 다짜고짜 윽박지르기부터 하고 나왔더라면 오늘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곰곰이 그때의 기억을 되돌려보노라니 가슴 한 자락이 뜨거워진다.
일전, 어느 일간신문의 사회면 가십난에 오른 희한한 기사 하나를 읽은 적이 있다. 한 가난한 대학생이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포장마차를 시작했다고 한다. 밤이 되자 어둠을 밝힐 전기가 필요해졌고,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인근 아파트 지하실에서 배선을 연결해 불을 밝혔다. 그런 지 며칠 만에 주민들은 경찰에 고발을 넣었고, 그 고학생은 절도죄라는 명목으로 꼼짝없이 전과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사연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학생이 며칠 동안 끌어다 쓴 전기료는 다 해 봐야 고작 오백몇십 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요새 흔해 빠진 초콜릿 한 봉지 값어치에도 채 못 미치는 액수다. 이 기막힌 사연에 그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물론 경위야 어찌 되었건 훔쳤다는 사실 자체만 놓고 따지자면 죄를 저지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철저한 신고 정신을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내면을 들키고 만 것 같아 참으로 서글프고 민망하다.
용서만큼 큰 가르침도 없다고 했던가. 백 마디, 천 마디의 훈계나 설교보다 단 한 번의 관용이 그를 올곧게 붙들어 주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오늘 그 안타까운 기사의 줄거리를 머릿속으로 굴리며 ‘용서’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다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