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수필 세트 / 유병근 

1

바다가 훤하게 보이는 언덕에 서 있다. 등 뒤에는 느긋한 산등성이가 능선을 끌어가거나 끌어오고 있다. 경계인처럼 나는 바다와 산의 중립지대에서 바다를 보다가 산을 본다. 바다를 듣고 산을 듣는다고 짐짓 속말을 한다.

어느 한쪽만을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편파적이다. 그런 핀잔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바다에 눈을 주다가 산에 눈을 준다. 바다를 듣고 산을 듣는다. 물결소리로 말하는 바다의 깊이를 헤아린다. 바람 소리로 말하는 산의 깊이를 헤아린다.

파도는 무수한 삼각형의 스크럼을 짜고 오는 듯하다. 그 대열을 보는 산 또한 삼각형 모양의 줄기를 멀리까지 띄우고 있다. 바다든 산이든 세모꼴을 즐기는 것 같다고 나는 바다를 보다가 산등성이를 타고 가는 세모꼴 봉우리에 눈을 판다. 그 행진은 멀고 가까운 침묵의 소리를 닮은 것 같다.

삼각형은 비교적 안전한 구도라고 하겠다. 한 나라의 정부 구성이라는 것도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로 짜인 안정감을 보여준다.

​ 행정부 구역에서 일한 적은 물론 없다. 사법부 입법부에서도 물론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삼각 파도를 타고 바다에서 일한 적은 있다. 삼각형 구도나 다름없는 산등을 오르내리며 땀을 흘리며 일한 적도 있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삼각형 구도 위주라고 하겠다. 그러나 삼각형을 말하는 내 머릿속에는 따분하게도 삼각형만 들어앉아 나를 그 구도 속에서 생각하게 놀게 한다.

고정된 생각의 올가미에서 풀려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면 주변이란 것이 모두 그렇고 그런 형태를 띤다. 나무는 삐죽삐죽 키를 세우고 구름은 어제처럼 여전히 지리멸렬하다. 좀 형태를 갖추는가 하면 금방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구름이다. 찢어지고자 하늘에 떠 있다고 나는 구름을 말한다. 혹 삼각형 구도가 있을까 하고 살핀다. 하지만 구름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흩어지다가 모여들다가 멋대로의 형태를 하늘에 그린다.

삼각형 일변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그런 구도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세상의 틀에 어긋나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을 세모꼴로만 보려고 하는 나는 어쩐 점 생각의 불구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삼각三脚걸음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겠다. 두 다리로는 불안하여 지팡이에 몸을 기댄 나를 보는 것 같다.

바지랑대는 지게를 세우는 덕을 갖는다. 그런 점 지팡이 또한 바지랑대나 그다지 다름없어 보인다. 살면서 누구의 바지랑대가 되어본 기억은 그다지 없다. 남을 도우는 것은 나를 도우는 일이라고 흔히 듣는다. 그런데 나는 아무에게도 힘이 되지 못하고 어리벙벙하게 살고 있다.

이런 처지에 무엇이 이러니저러니 말할 입은 전혀 없다. 그런데 내 입이 자꾸 세모꼴 모양으로 어긋나려고 한다. 뭘 잘못 먹었나.

나를 지탱할 지팡이는 없을까.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산비탈을 쓸고 오는 회오리바람이 있다. 이런 때는 뜻밖에도 바다가 우는소리, 산이 우는소리를 듣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바다와 산은 서로 한 짝이다. 나는 지금 그 짝꿍끼리 뭐라고 주고받는 소리를 듣는 느낌에 찬다.​

2

종합선물세트라는 것을 소재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사물의 짝 맞추기를 위한 메모를 했다.

하늘과 땅, 해와 달, 꿈과 현실, 빠름과 느림, 깊이와 높이, 긴 것과 짧은 것, 수컷과 암컷, 사랑과 미움 등을 조립한 글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누 치약 칫솔 로션 등을 무지개 색깔로 보기 좋게 구색을 갖춘 선물상자를 받았을 때이다.

세상은 홀로가 아닌 짝 맞추기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것에 대한 저것이다. 이 각과 서로 마주 보는 저 각의 은근한 눈빛이다. 상대성원리라는 말을 어렴풋이나마 생각하는 눈빛이다. 그 눈빛으로 세상의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맞다. 수필가 또한 세상을 보고 찾는 끊임없는 탐구자임을 깨닫는다. 수필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으면 나는 우선 세모꼴을 들추고 싶다. 네모와 동그라미 같은 원만형도 있지만 세모꼴이라야​ 수필의 참 맛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네모는 지나치게 정직하다. 빈틈이 없어 보인다. 안정감으로 말하면 네모가 제일이지 싶다. 그런 탓으로 건축물은 모두 정사각형이거나 장방형 사각형인 든든한 네모 귀퉁이가 건축물을 안전하게 떠받는다. 둥근 모양새는 호의호식하는 팔자 좋은 천하태평 형이다.

어떤 고뇌, 어떤 갈등 같은 것을 연상할 수 있는 세모꼴은 수필을 말하거나 쓰거나 할 경우 알맞은 형태가 아닐까 싶다.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는 수필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런데 달콤하지만은 않아야 한다는 고집이 수필에 브레이크를 걸고 싶어 한다. 이건 아무래도 혼자 잘난 척하는 어설픈 외통수인지도 모른다.

수필의 맛은 어느 한 가지 맛으로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단맛 매운맛 신맛 쓴맛 그리고 짠맛으로 조화를 이룬 종합 수필 세트를 나는 생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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