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배를 접지 못하여 / 박서영
가령 이런 것이다
몇이 모여 오랜만에 종이배를 접어보지만
한 명도 제대로 접지 못할 때
나는 종이배를 태운 문장들과 함께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창밖의 목련은
아무도 접지 못한 종이배를 접어 나비를 태운다
아무도 종이배를 접지 못했으므로 나는 그날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내 왼쪽은 늘 아득한 곳
최근에 나와 가장 가까웠던 슬픔이 고여있다
입술을 빠져나간 헛된 질문이 밤의 밀거래를 완성한다
나는 하늘을 물들일 나의 부피를 알고 있다
그것은 매우 작고 작은 하늘의 땅이어서
아무도 잃어버린 줄도 모를 것이다
문장이 낯익어, 간밤에 내가 쓴 것일까!
즉, 우리가 어느 해 그 해변에 있었다는 것인데
두근거리는 파도와 함께 그곳에 숨었다는 것인데
추억을 지키는 그따위 일에 누가 목숨을 걸 것인가
그러나 나는 나무에 핀 하얗고 작은 종이배들이
우리가 함께 갔던 해변에서 밀려온 것이라 믿는다
목숨을 걸고 추억이 밀려온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