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도란도란 / 김인기 

세상엔 이런저런 인연에 따른 모임들이 많다. 둘이나 셋이 모이는 것에서부터 백만이 넘는 군중의 운집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도 제각각이다. 그 지향하는 바가 각기 다르니까, 이걸 두고 누가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살면서 그 구성원들이 적은 모임일수록 더욱 알차다는 걸 알았다. 커다란 무리를 지어 소란을 떠는 게 이제는 내게도 거북한 것이다. 거기에서 돋보이고자 제 자랑이나 하고, 그게 내내 관행인 집단이라면 나는 그만 발길을 뚝 끊고 싶다. '나는 이런저런 실력자와 안다.'거나 내가 이렇게 대단했다.'는 따위의 소음이 들리면, 나는 짜증부터 난다.

나는 소박한 자태로 아름다운 이야기나 도란도란 나누는 작은 모임을 좋아한다. 이게 당장 실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정겨운 기회가 많아져야 나도 행복하다. 아마 이 사회도 이런 생활로 더 좋아질 것이다. 나는 군중 심리에 빠져 정신을 잃고 싶지 않다. 사람들을 돌보지도 못하는 온갖 담론들이 위대할 수는 없다. 이것도 일종의 허풍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런 일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을 그다지 믿지도 않는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봐도 막막하다.

"단칼에, 그러니까 매사를 단칼에 바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우리들은 지금​ 혁명을 제도로 보장하는 사회에서 산다. 누구든지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정당을 설립하고 유권자들의 동의를 거쳐 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처지가 같은 게 아니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불만이 없지도 않으나, 유세와 선거라는 나름의 절차가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도 이런 걸 모조리 무시하겠다니. 더구나 이제는 누가 총칼로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회가 그런 총칼로 굴러가기에는 너무 복잡해졌다. 의사결정과정에 그런 권위주의가 바로 폐단이 된 것이다.

하기야 답답한 현실을 나도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태국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니까, 그들도 그랬겠지. 그러나 그건 한심한 인간들의 몰지각한 망발이다. 이른바 군인들이 '구국의 결단'을 내리라는 건데, 아무리 언론자유가 보장되었다지만, 이렇게나 함부로 지껄여도 되는지,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더구나 이 사회에는 이제 정치권력보다 경제정의가 더 걱정이 아닌가 싶다. 정치권력이야 선거로 교체한다지만, 거대 자본은 마구 횡포를 부려도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다. ​

'혹시 이것들이 우리들의 의식意識마저도 마비를 시키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 나도 그만 불안하다. 더구나 곳곳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지 않느냐. 정말 그게 그렇게 되면 제 의식이 마비가 되어도 자신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게 된다. 이미 넋이 나갔는데, 그걸 어찌 살았다고 하랴.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만가만 헤아리며 도란도란 속살거릴 생각부터 한다. 내 됨됨이야 아직도 꼬질꼬질 보잘것없으나, 내 바라는 바는 그렇지 않아서, 나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 <춘작보희春鵲報喜>를 보면서도 이렇게 자꾸만 궁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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