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침, 그 위 / 최명임-2024 우하 박문하문학상 대상
어느 씨족의 씨방에서 빠져나와 저의 왕국을 세웠을까. 바람도 지치는 변방에 홀로 피었더라면 멍이 들었을 꽃이다. 무리를 이끌고 봄의 뜨락에 흐벅지게 피었다. 꽃은 제 모습에 반해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나는 꽃들의 하느작거림에 벌겋게 취기가 오른다.
개양귀비가 붉은 깃발을 높이 올렸다. 아래로 필까, 위로 필까 고개를 내리 꺾고 몇 날을 생각에 잠겼더니. 꽃잎들이 하늘가에서 팔랑거린다. 향기에 취한 바람이 어쩌자고 꽃 속을 누비고 다닌다. 햇살 정원에서 벌이는 꽃들의 왈츠 바야흐로 그들의 우주가 펼쳐진다.
그들의 우주는 한 점으로부터 발아하였다. 바람과 비와 산소와 대지의 뭇 요소와 알 수 없는 무수한 입자들과 융합하여 존재의 출현을 예고하였다. 한 점은 현상의 근원이 되었고 그 존재의 바탕이 되었다.
꽃씨 한 점이 겨우내 응축해 두었던 에너지를 터뜨려 야심차게 뿌리를 뻗는다. 얼마쯤 더 내려가야 기둥이 흔들리지 않을는지. 축축한 어둠을 파헤치며 곁뿌리를 낸다. 대지는 흔쾌히 제 혈맥을 뚫어 길을 내어준다. 땅의 기운과 물의 기운을 올칵올칵 빨아올리면 꿈은 상승하는 기류를 따라 지상으로 오른다.
꽃 대궁이 짜릿한 비밀 하나 간직한 채 하늘을 향해 날개를 뻗는다. 음습한 바람이 다가와 옆구리를 후려치면 뿌리가 땅을 꽉 움켜잡고 중심을 잡는다. 광풍狂風으로 돌변하면 대궁은 활처럼 휘었다가 툭툭 바람을 털고 일어나 척추를 곧추 세운다. 때가 되자 대궁이 이파리로 수평을 잡고 서서 꽃받침을 짠다. 무게에 짓눌려도 솔기 터지지 않게 박음질하고 한 번 더 휘갑친 듯, 꽃이 흔들려도 꽃심을 받칠 만큼 옹골진 매무새다.
받침은 받침 그 이상의 존재이다. 어린 것의 요람이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이며 최고의 지지자이다. 돌담 밑에 핀 봉선화와 외딴 길목에 달맞이꽃 한그루, 휘황한 도시의 핵을 과녁으로 삼고 눈부시게 피어난 장미화의 내력을 들여다보아라. 영혼을 뽑아 올려 올올이 꿰맨 받침의 사연이 알알하게 다가올 테니.
터질 듯이 부풀은 꽃맹아리, 맹랑한 꽃잎 하나가 섬섬옥수로 솔기를 턴다. 투두둑! 꽃받침이 펼쳐지더니 꽃잎들이 하르르 숨을 토한다. 명주실로 짠 피륙의 결이 저 같을까. 열두 폭 치마를 풀어헤치고 팔랑대는 저 홍조라니. 화심을 주체 못 한 꽃잎들이 깃발처럼 나부낀다. 화편花片마다 실핏줄이 팔딱거리고 혈액이 온 몸을 돌아 흐른다. 받침은 꽃에 부신 듯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손에 땀을 쥐고 받쳐 든다.
받침! 그 위에 꽃이 일어선다.
명사‘꽃’에서 치읓을 똑 따버렸다. 받침을 놓쳐 버린 글자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바람이 불자 꽃잎이 우수수 흩어졌다. 떼어버린 받침을 여기저기 자리바꿈 하여보았지만, 균형의 원리가 깨진 자리에 뜻도 없는 글자만 나뒹굴었다. 겹받침, 쌍받침을 들이밀고 다른 것들로 받쳐보아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때 조선에서도 호기롭게 모음‘ㅗ’로 자음‘ㄱ’을 받쳐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꽃이 피지 않았던 거다.
옛 어른이 글자 곶(꽃)’을 지을 때, 자음 ㄱ과 모음 ㅗ는 꽃송이와 대궁에서 찾은 것 같다. 나는 꽃받침에서 치읓을 찾고서야 깨달았다. 존재는 받침 위에서 피어나고 또 빛난다는 사실을.
받침 없이 우뚝한 존재는 없었다. 자아도취에 빠져 뿌리를 까맣게 잊어버린 꽃도 받침 꼴이라 벌과 나비가 주저 없이 내려앉는다. 씨방이 꼴을 갖추고 그 안에 생명 하나가 깃들면 꽃은 그제야 고개를 풀썩 꺾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뿌리 위에 대궁이 축을 이루고 줄기가 뻗어나가고 그 위에 자신이 앉았음을, 저는 크고 작은 힘의 바탕에서 생겨났음을 깨닫는 순간 꽃은 오롯이 받침으로 변태한다.
연꽃은 부처님의 받침이다. 통꽃도 아니건만, 낱낱의 꽃잎이 모여 하나로 피었다. 홍안은 막 씻은 듯 부신 듯하고 결은 선명해서 손끝에 잡힌다. 그러도록 진흙 속에서 저를 얼마나 닦고 가다듬었을까. 자태가 둥글어 원만하기 그지없는 저 자리 꽃, 만다라꽃이 부처님을 받들고 입정에 들었다. 그리하여 붓다의 자비로운 미소가 어둠을 헤치고 온 누리로 번진다.
받침은 모두 아래에 있다. 돌탑의 아랫돌이요, 굄돌 같아서 하나만 빼어도 탑은 무너지고 만다. 아랫돌의 염원이 층층이 올라 탑머리에 얹히면 소망은 이루어질 테니, 그 자리가 어디 만만하던가. 지나치게 둥글거나 모가 나도 쓸모가 없지만, 반반해도 받칠 힘이 모자라면 탑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받침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제가 받드는 존재가 더없이 빛나기를 소망한다.
조물주가 그럴듯한 생명체를 하나 지어놓고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떠올랐다. 하나에서 한 줌 떼어 하나를 만들었다. 그 하나로 하나를 받치니 人間이 되었다. 하나는 하나의 뿌리가 되고 기둥이 되고 받침이 되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백이 되고 수만이 되자 세상이 생겨났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대를 이어 내려왔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내리 떠받침’이다. 부모가 자식을 받치고 자식이 그의 자식을 받친다. 과거는 오늘의 토대이며 오늘은 내일의 기반이므로. 나는 평생을 그리 살았거늘 이울어가는 오늘에도 자식의 안녕을 위해 간절히 두 손 모은다. 그 또한 내일을 받치기 위함이라 이 세상에 생명이 존재하는 한 다함이 없으리라.
대지는 인간의 本이다. 여느 초목들처럼 우리도 에덴의 어디쯤 해 비치는 곳에 뿌리내린 한 그루 꽃나무이다. 그가 있어 너와 내가 생겨났으며 너는 나의, 나는 너의 꽃이고 받침이다. 풀이 죽은 사람도 자연을 찾아가면 생생해지는 까닭이 아닐까. 종내에는 그곳으로 돌아가 살과 뼈를 묻고 자연이 되어버린다.
봄의 뜨락에 사람들의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이름과 색깔과 생김새는 물론 결이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닮은 비밀은 한 뿌리에서 갈라졌다는 데 있다. 우리는 뿌리에서 뻗어 나와 줄기로 갈라져 대궁을 세우고 받침을 펼쳐 그 위에 핀 존재들이다.
받침, 그 위에 핀 꽃들에게 이 봄날 나는 무엇을 공손히 바칠까. 나 잘났다, 너 잘 났다 앞다투지만, 우리는 서로의 위에서 피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