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등 / 강기영
우리 동네 수선집 아저씨는
늘 등 뒤에다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 다 등 뒤에다 놓아두고
눈앞에 놓인 실밥을 뜯는다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돋보기안경 알에 우묵하게 고이듯 온갖 일들 다 알고 있다
줄이고 늘리고 뜯고 다시 깁는 일이
구부린 등의 힘에서 벌어진다
고도로 집중하는 저 각도는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보이지 않는 등 뒤를 믿는 자세다
라디오 사연들은 마치 아저씨의 등에 업히듯,
때로는 업힌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다독이듯 흘러나온다
등 뒤로 지나가는 시간은 늘 지금이고
손때 묻은 재봉틀의 노루발이 느릿느릿 걸어도
어느 날엔 실밥이 터져 정오가 줄줄이 새는 태양이 찾아오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엔 지루한 장마가 찾아와
잿빛 구름 수선을 의뢰하기도 한다
즐거운 등 뒤,
고개를 들 때,
오목하게 고였던 초점들이
근시의 근처까지 흩어진다
멀리 시력이 사라진 것처럼 실과 바늘이 추던 춤을 멈추고 누워 있다
등을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는 행동은 굴종(屈從)과 공경이 번갈아 쓰이지만 나지막이 내려놓은 아저씨 등은 한 집안을 일으키는 일로 쓰였다
등을 펴고 등을 끄는 일로
하루의 무게를 꿰매는 즐거운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