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년 모월 모일, 가위바위보 삼 형제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자, 우리 슬슬 게임을 시작해 볼까?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바위가 싫증이 났는지 그만하겠다며 자리를 뜹니다. 그때 가위가 보에게 얼른 말합니다.
"자, 어때, 우리 둘이 한 판 붙어볼까? 하기야, 해보나 마나지. 너랑 겨루면 나는 백전백승이니까. 너처럼 상대방에게 마음의 손금을 숨김없이 다 펴 보이면 질 수밖에 없지. 이 세상엔 이기는 자만이 가치가 있어. '이름은 기억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도 있잖아. 인생은 어차피 서바이벌 게임이거든. 내 특기는 단죄를 하는 거야. 내 가위질엔 누구도 당할 자가 없어.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가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보가 지지 않겠다는 듯 대꾸합니다.
"그래, 난 너한테 져. 너는 뭐든지 가차 없이 자르고 오려서 조각을 만들어버리니까. 그래도 너는 바위한테 지잖아. 네가 아무리 가위질을 잘 해도 바위를 이길 재간은 없지. 그런데 나는 그런 바위를 이겨. 그러니까 너무 으스대지마. 난 네가 조각내서 흩어놓은 것도 다 싸안는 힘이 있거든. 단죄보다 더 훌륭한 건 포용이야."
그때 바위가 어느새 들어왔는지 말참견을 합니다.
"보야, 난 너한테는 지지만 가위를 이기잖아. 아무리 잘라내는 힘이 세다 해도 주먹 불끈 쥐고 버텨내는 나를 당할 수는 없어. 나는 웬만한 비바람은 눈 질끈 감고 참아내거든. 우직하게 침묵으로 인내하는 나는 그만큼 강해. 그렇지만 너의 포근한 사랑엔 속수무책이야. 너는 잘난 것도 못난 것도 한데 모아 따뜻하게 싸안으니까. 내가 너한테 불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지."
가위바위보 삼 형제의 말다툼을 밖에서 들으신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왜들 이렇게 싸워? 형제들ㄱ끼리 누가 이근들 그게 뭐 대수라고, 가위는 정의로워서 좋고, 바위는 고통을 잘 견뎌내서 좋고, 보는 마음이 넓어서 좋아. 그러니 싸우지들 마라."
나의 심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음식점 한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립니다. 어떤 모임의 회원인 듯한 아주머니들 여럿이 둘러앉아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네요. 테이블 한구석엔 선물이 요것조것 옹기종기 놓여 있어요.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아마도 이긴 사람이 자기 마음에 드는 선물을 먼저 고르기로 했나 봐요.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까르르….
다시, 가위와 바위와 보의 말을 들어봅니다.
가위, 자르거나 잘린다는 건 단절이나 소외를 부르기도 해. 그렇지만 세상 이치는 양날의 칼과 같아. 그 옛날 산파 할미의 가위질이 없었다면 어머니와 그 어머니와 그 어머니가 태어날 수 있었겠어? 사람들이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배냇저고리를 입고 포대기를 두르고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다 내 덕분이지. 옷 한 벌, 책 한 권도 마름질 없이는 만들 수 없어. 둘러보면 내 힘은 무궁무진해. 나무도 가지치기를 잘 해줘야 튼실하게 자라고 긴 머리도 내가 없으면 자르지 못해. 전정을 하듯, 사람의 마음속에서 가지를 벋는 번뇌도 잘 다듬어주고 상처도 도려내갸 새순이 돋을 수 있겠지. 불의가 가득한 세상도 그렇게 마름질 잘하면 멋진 신세계가 될 수 있을걸. 만일 이 세상에 작은 것이 없고 큰 것만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해. 거대한 마천루도 작은 것이 모여서 이루어졌듯, 무릇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루니 새로운 세계는 마름질로 탄생하는 거야. 그러니 내 친구 교두각시가 자랑을 할만도 하지.
바위. 서로 잘 났다고 떠드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도덕군자처럼 입 다물고 지그시 참아내는 나는 어때? 나는 세상의 비바람 견디며 큰 산을 지키는 힘이야.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던 시인도 있잖아.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던…. 세상에 헛된 우옥에 몸 가벼이 하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비명 지르지 않고, 세속에 흔들리지 않는 나처럼 꿋꿋이 살아갈 수 있다면 좋지 않겠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나도 부서져야 새 생명을 얻긴 해. 큰 바위는 산을 지키지만 내가 주춧돌이 되고 디딤돌도 되고 모래가 돼야 집을 지을 수 있잖아. 집 없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겠어? 내 몸 깨뜨려 조각품도 되고 제단도 되고 비석도 되고 돌탑도 되는 건 새 생명을 얻는 일이야. 세상의 반석이 되는 내겐 구원의 힘이 있어. 길바닥에서 사람들 발길에 이리저리 구르는 돌멩이라도 아무렇게나 걷어차지 마.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모든 돌에는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오랫동안 격심하게 살아온 시간의 내력이 숨어 있거든.
보. 뭐니 뭐니 해도 싸안는 힘은 나를 따를 자 없어. 내 품에서는 둥근 것도 모난 것도 하나가 돼. 내 모양을 고집하지도 않아. 둥근 것을 싸면 둥근 몸이 되고 네모를 싸면 네모가 되는 거야. 그러려면 우선 내 몸을 바닥에 반듯하게 쫙 펴야 돼. 나는 바닥의 힘인 거야. 이 세상에 바닥이 없다고 생각해 봐. 세상은 사상누각, 휘청휘청, 무엇 하나 오전하게 설 수가 있겠어? 그러니까 나는 대지 모성의 힘이야. 낮은 자리에서 모든 걸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대지가 없다면 자연도 사람도 생명을 부지할 수가 없잖아. 나는 어머니가 안아주는 따뜻한 가슴이야. 잘 생각해 봐. 이 세상의 바닥엔, 바로 나, 거대한 보자기가 있어.
엎치락뒤치락,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서로 자리를 바꾸는 가위바위보는 어느 한 극단極端에 머물지 않고 잘 융화합니다. 가위바위보 놀이엔 불평등 계약 같은 것도 없습니다. 애초부터 몰고 나온 금수저나 은수저 같은 건 아예 맥을 못 추지요. 갑이나 을? 그런 것도 소용없어요. 부자든 빈자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다 함께 어울릴 수 있거든요. 남녀노소 누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동시에 손 내밀어 승부를 결정짓는 놀이, 공평하고 정정당당하게 내미는 손엔 오로지 자기 선택만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거라면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해야겠지요.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고, 내일의 패자가 모레의 승자가 될 수도 있으니 매력 있지 않나요? 이 세상도 가위바위보 놀이의 법칙대로 굴러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테이블 저쪽에서 웃음소리가 커집니다. 한 아주머니가 자기가 고른 선물을 들고 희희낙락. 양쪽 입꼬리를 한껏 올리면서 웃네요. 둘보다는 셋이, 셋보다는 넷이, 여럿이 어울릴수록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놀이. 우리 모두 함께 모여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