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페이지들을 주워 책을 만들었다


거기
한 사람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한 페이지도 포기할 수 없어서


밤마다 책장을 펼쳐 버려진 행성으로 갔다
나에게 두개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처음엔 몰래 훔쳐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너는 정말 슬픈 사람이구나
언덕을 함께 오르는 마음으로
(중략)
한 그림자가 다가와
돌아가는 길을 일러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빛이 너무 가까이 있는 밤이었다


―안희연(1986∼ )

 

 계절이 지나면 이불을 바꾸고, 옷장을 정리한다. 시 읽는 마음에게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여름에는 여름의 시집을, 겨울에는 겨울의 시집을 꺼내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둔다. 여름에 여름의 시집을 챙기는 너는 바보가 아닌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맞다. 시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핑계다. 좋으니까 이것저것 색다른 핑계를 대보는 것이다. 핑계 중의 하나로 여름마다 새로 쓸어보는 시집을 소개한다.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7월의 시작을 이 시집과 함께하는 것은 몇 년 전부터의 루틴이 되었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 갔을 때, 누군가 물었다. 좋은 독서란 어떤 것이냐고. 그때 이 시를 읽어드렸어야 했는데 때를 놓쳤다. 놓친 김에 시집을 다시 열어보고 나도 한번 되새겨본다. 책을 읽는 일은 남들이 쓴 페이지들을 주워 나만의 책을 만드는 것이다. 거기 어떤 내 마음 조각이 살아 있을지 몰라서 조심조심 그것을 찾는 과정이다. 밤마다 책장을 펼치고 지구 아닌, 다른 내 별나라로 떠나는 일이다. 거기서 언덕을 오르면서 마음을 찾고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아주 뜨거운 여름만 남고 독서는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추천한다. 여름과 독서가 함께 찾아오는 7월이 되시기를.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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