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새벽 / 이민하
할머니 화장은 왜 하셨어요. 어딜 급히 가시려고 빨간 루주가 어색한 줄도 모르고
문을 열고 바람을 맞고 계세요. 화장 고치는 건 사진 속의 꽃 가꾸는 일보다 쉬운
일이잖아요. 아파트 화단만 지나면 벌통처럼 북적거리는 시장엔 왜 며칠째 안 가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그어 놓은 앨범의 빨간 줄들은 색이 바래지도 않는데 색연필 잡을
힘조차 없다는 듯 웃으시고는 왜 텅 빈 냉장고는 닦고 계세요. 엊그제 꿈에 할아버지랑
함께 떠나는 택시를 멈춰세웠던 내게 잘했다 하셨잖아요. 간밤의 꿈엔 왜 또 오셨어요.
밤잠을 설치며 화장은 왜 하셨어요. 전화 소리 천둥 칠 때마다 귓불이 파랗게 멍들었
잖아요. 베란다에 심어 놓은 신발 내놓으라 하실까 봐 종일 창문을 악물었잖아요. 당신은
화장化粧을 하고 나는 화장火葬을 하는 끝없는 얼굴 끝없는 새벽인데 서둘러 무엇하게요.
백합같이 잠들던 엄마 흉내는 저도 이제 시시한걸요. 사진 속에 지는 당신의 눈물꽃
바람에 날려오면 알맞게 무른 신발을 따 내드릴게요. 허공의 색깔엔 바람의 붓칠만이
닿을 수 있게 사소한 바람이 내 문을 먼저 두드릴 수 있게 오늘은 문 두드리지 말고
그냥 가세요. 어색한 빨간 입술 좀 제발 고치세요. 화장 고칠 시간은 충분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