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가 온통 꽃향기로 부풀어 오르는 어린이날 아침이다. 푸르른 하늘을 비상하는 새들이며 연초록빛 벌판을 달려가는 시냇물이 싱그러움을 더한다. 온 누리에 넘치는 생명의 찬가에 일상사로 각다분해졌던 마음이 절로 순해오는 것 같다.
이윽고 동산에서 해가 고개를 내밀면, 손에 손 잡고 거리로 공원으로 봄 소풍 나온 햇병아리들의 재잘거림이 꽃향기보다 등열登熱할 것이다. 그 무지개풍선잔치 같은 광경을 만나면 한동안 울울하던 기분이 봄기운에 얼음물 녹듯 풀어져 버린다.
요즈음 들어서, 이 축복 넘치는 날 지하철을 타는 건 적잖이 심적인 불편을 강요당해야만 한다. 동요 속의 정서와 지하철 안의 풍경이 너무도 달라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른 시각, 공휴일의 달콤한 휴식을 반납하고 긴한 볼일을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라 넓고 높은 푸른 하늘…" 아침 댓바람부터 거리거리에서 <새싹들이다>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씩씩하고 생기에 찬 창작동요는 열차 안까지 따라와 귓속에 쟁쟁거린다.
전동차에 오르는 순간, 여느 때나 다름없는 낯익은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노랫말에서는 연신 마음을 열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라고 외치고 있건만, 열차의 객실은 머리를 숙이고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모습이 다들 '나는 어린이가 아니잖아요'라며 침묵으로 항변하는 듯하다. 설사 어린이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따금씩 고개 들어 저 높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슴에 쌓인 묵은 찌꺼기를 비워 낼 수는 없는 것일까.
지하철 내부는 간단없이 구르는 전동차 바퀴 소리만 들려올 뿐 절간 같은 고요가 흐른다. 사람은 많지만 도무지 사람 냄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일제히 고개를 떨구고 스마트폰에 열중해 있는 찻간의 풍경이 꼭 장례식장에서 조문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에 빠져 지내는 이들들 두고서 '수그리족'이라는 별칭이 생겨났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연유된 신조어일 게다. 처음 어느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으되 참 그 빗댄 말 한번 그럴듯하구나 싶다.
다들 무엇에 그처럼 열심인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슬쩍슬쩍 곁눈질을 해본다. 더러는 부지런히 정보 검색을 하는 이들도 있고 더러는 정신없이 게임에 빠진 이들도 있다. 그냥 습관적으로 이것저것 눌러대며 손가락 운동을 하고 있는 축도 보인다. 정보 검색을 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경우야 또 그렇다손 쳐도, 아무런 의식 없이 무작정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들을 볼 때면 정말 할 짓이 그리도 없는 것인지 적이 한심스런 생각마저 든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눈 감고 쪽잠이라도 자 두라고 주제넘는 참견을 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그편이 그래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사에서 방전을 면할 만큼씩은 재충전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이다. 아니, 기도를 그만큼 열심히 했으면 아마 다들 적어도 한두 가지씩의 소망은 이루고도 남았을는지 모른다.
모두가 제 잘난 맛에 살아서이리라. 오늘날은 사람이 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데에 자린고비처럼 인색하다. 그 틈을 타서 기계가 사람 대신 절 바치기를 강요한다. 기계한테는 저리도 끔찍이 고개 숙임에 잘 길들여져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과 기계의 위상에 시나브로 자리 바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말의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게다가 알파고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세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는 시대이니, 그런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날까 저어 된다.
지하철에서 내려 종종걸음을 친다. 마음을 열어,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라며 외치는 아이들의 해맑은 노랫소리가 어느새 보도步道에까지 따라와 있다.
저 멀리 허공을 향하여 눈길을 보낸다. 울울하던 가슴에 화한 기운이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