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증상은 여자들한테만 나타나는 줄로 알았다. 쉰을 전후한 중년 나이가 되면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면서 달거리가 멈추고 그로 인해 급격한 신체적 변화와 함께 겪게 되는 마음의 감기 같은 것이 갱년기 증상 아닌가.
나중에 깨닫고 보니 그게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남자들에게도 갱년기 증상은 있었다. 다만 여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신체적 변화가 시나브로 진행되기에 뚜렷이 인지를 못 할 뿐이다.
오십 대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갱년기 증상인지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초저녁에 한숨 빠딱 자고 나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을 들이려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넷…' 숫자 세기를 수십 번, '가 나 다 라…' 한글 자모순으로 헤아려 보기를 수백 차례 그리고 산 이름, 강 이름, 푸나무 이름 부르기 등등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본다. 하지만 하나같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청하려고 애를 써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멀리 달아나 버리는 것이 이 잠이라는 놈이다.
이럴 땐 다른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과감히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네 이놈! 그래, 할 테면 한번 해 봐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두고 보자. 불면증에는 당당히 불면으로 맞서리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조목을 응원군 삼아 전의를 다진다. 이렇게 놈과의 한판 대결을 선언한 다음 결전에 돌입하면 의외로 쉽사리 전과를 거두게 되곤 한다.
한동안 불면증으로 고통을 받다 보니 극복할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불현듯 오래 전에 읽은 「민옹전」이야기가 떠올랐다. 「민옹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연암 박지원 선생이 쓴 소설로, 거기에는 불면증을 이겨내는 비법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당시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인 민 옹의 지혜로움에 탄복을 금치 못했었다.
선생인 민 옹에게, 도무지 식욕이 없고 불면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묻는다.
"나는 특히 먹는 것을 싫어하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것이 병이 되었나 봅니다."
선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민 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기상천외한 반응을 보인다. 아내의 주검을 앞에 놓고 울며 슬퍼하기는커녕 질그릇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장자처럼,
"그거 축하할 일입니다!"
이 전혀 상식 밖의 대답에 마음의 굴곡이 일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당연히 '거 참 안됐습니다.'라거나 혹은 '잠을 못 주무신다니 어쩌지요.' 하는 등속의 위로를 듣고 싶은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심사 아닐까.
선생이 민 옹의 말에 적이 못마땅해져서 "영감님, 참 쌤통이구먼, 대체 무엇을 축하한단 말이요?"라며 반문하니 글쎄 이어지는 민 옹의 대답이 또 걸작이다.
"당신은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먹기를 싫어하니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겠소. 거기다 잠까지 없다니 낮밤을 아울러서 나이를 갑절이나 사는 것이 아니겠소.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나이를 갑절로 산다면 그야말로 수壽와 부富를 함께 누리는 셈이구려."
얼핏 생각하면 얼토당토않은 궤변처럼 여겨지지만, 솜솜 뜯어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없지 않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듯이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버리면 부자 되기 어렵고, 잠을 '일시적인 죽음'이라고도 부르니 잘 것 다 자버리면 각성해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그만큼 인생을 헐겁게 사는 결과가 되는 셈이 아닌가. 민 옹은 그 말을 던져 놓고는 자신만의 독특한 처방으로 선생의 불면증을 다스려 준다.
이윽고 밤이 되자 만 옹의 지혜로움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는 선생의 존재는 아랑곳없이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단정히 앉아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만이 흐른다. 선생은 몹시 무료해 한다. 선생이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하지만 민 옹은 더욱 입을 굳게 다물 뿐이다. 그의 이러한 행동이 다분히 의도된 처신임은 굳이 부언이 필요치 않으리라.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민 옹은 갑자기 일어나서는 등불의 심지를 긁어 방 안을 환하게 만든다. 그래 놓고는 전혀 예상 밖의 제안을 한다.
"내 나이가 젊었을 때는 눈으로 한 번 스치기만 하면 그대로 외웠소.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늙어 버렸다오. 그래도 우리 내기 약속 하나 하구려. 평생 읽지 못한 책을 각자 두세 번 훑어보고 외워 보기로 합시다. 만일 한 자라도 틀리면 약속대로 벌칙을 받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선생은 그가 늙었다는 사실에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호기롭게 "좋소이다."라며 쾌히 응한다. 그러고는 즉시 시렁 위에 꽂힌 『주례周禮』를 뽑아 든다. 민 옹은 '고공考工'편을 고르고, 선생한테는 '춘관春管' 편이 돌아온다. 생각건대, 아마도 고공 편이 춘관 편보다 훨씬 난해가 내용이 아닌가 싶다. 선생으로 하여금 그 겨룸에서 일부러 자신을 얕잡아보게 만들기 위한, 민 옹의 고도로 계산된 심리작전임에 틀림없으리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민 옹이 방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큰 소리로 외친다.
"나는 벌써 다 외웠소!"
선생은 외우기는커녕 아직 한차례 끝까지 훑어보지도 못한 터이다. 선생이 깜짝 놀라 민 옹에게 잠시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나, 그는 자꾸만 다그쳐 선생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민 옹의 재촉이 심해질수록 선생은 더욱더 외울 수가 없다. 그러다 잠이 쏟아져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곯아떨어져 버린다.
다음 날, 하늘이 훤히 밝은 후 선생이 민 옹에게 묻는다.
"영감님, 어젯밤 기억한 글을 다시 외울 수 있겠소이까?"
선생이 틀림없이 그 말을 물어올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는 듯 민 옹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처음부터 아예 외우지 않은 걸요."
대략 이와 같은 얼개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민 옹의 처신을 놓고 과연 어떻게 풀이를 해야 할까. 그것은, 잠이란 억지로 청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순리에 맡겨야 하는 것이라는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우쳐 주고 있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 없이 평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할 때는 눈빛이 초롱초롱해지지만, 하기 싫은 일을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해야 할 때면 졸음이 몰려오게 마련이다. 학창시절을 한 번 되돌아보라. 다들 경험한 바이겠지만, 가장 효능 탁월한 수면제는 바로 마지못해서 한 공부 아니었던가. 결국 민 옹이야말로 인간의 이러한 심리기제를 기막히게 역이용하여 슬기로운 처방을 내리고 있는 훌륭한 정신치료사라고 해도 좋으리라.
불교에서는 한 생각 돌이키면 지옥도 극락이 된다고 했다. 일체가 유심소조唯心所造라는 경구도 있다. 그만큼 사람살이에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일 게다.
참으로 그런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은 우리들 마음의 작용에 달려 있다. 불면증인들 무엇이 다를 것인가. 그것 또한 순전히 마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병이니,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불면증을 치유하는 지름길이 되리라.
어쩌다 공연한 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게 되는 날이면 나는 이 옛 소설 속의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면서 민 옹의 처방처럼, 역발상으로 그렇게 불면증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지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