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논의 노래 / 김순경
구슬픈 가락이 무논을 적신다. 발을 옮기기도 어려운 넓은 수면을 따라 사방으로 뻗어간다. 고단한 삶의 한 허리를 베어낸 듯한 가사가 구성진 목소리를 타자 곳곳에서 추임새가 터져 나온다. 메기는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후렴처럼 받는소리가 꼬리를 문다.
새벽 어스름이 걷히기도 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일전을 각오한 전사처럼 온몸을 감싸고 모판에 발을 들여놓는다. 동트기 전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모를 심던 동지들이라 굳이 안부를 묻지도 않는다. 갓밝이에 시작하면 하루가 얼마나 길다는 것을 알기에 말수마저 줄여가며 기력을 아낀다. 해마다 이때만 되면 끊어질 듯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달포가 넘도록 몰려다닌다.
모내기는 정말 힘들었다. 진흙에 빠진 발도 아팠지만, 디딜방아 공이처럼 쉴새 없이 굽혔다 펴는 허리가 문제였다. 혼자 하는 일이면 아무 때나 쉴 수 있지만 수십 명이 호흡을 맞추는 일이라 마음대로 쉴 수가 없었다. 시커먼 거머리가 다리에 붙어 피를 빨아도 눈치를 보며 떼어낼 정도였다. 각자 움직이는 범위가 정해져 있어 게으름을 피우거나 더듬거리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조금만 느려도 옆 사람의 핀잔을 듣고 심하면 품앗이 기피 인물로 낙인찍혔다.
무논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갯벌처럼 질척거리는 논을 수없이 오가다 보면 소도 사람도 금세 지쳤다. 마른 밭을 가는 쟁기질도 힘든데 물을 첨벙거리며 논을 갈고 고르는 작업은 만만치가 않았다. 물을 일렁이며 보드랍게 흙덩이를 부수는 써레질은 건장하고 숙련된 일꾼이 맡았다. 논일을 잘못하면 바닥이 단단해 제대로 모를 심을 수가 없었다. 써레질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그날 작업 능률을 좌우했다.
유년 시절 모춤 벼르는 일부터 배웠다. 일꾼들이 모판에 붙어 모를 찌면 잽싸게 못단을 논두렁에다 올려 물부터 뺐다. 가까운 곳은 내가 던져서 벼르고 먼 곳은 형님이 져다 날랐다. 눈대중으로 하는 일이라 정확하게 소요량을 계산하고 배치할 수 없어 늘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너무 촘촘하면 모춤을 밀어내느라 일이 더뎌지고 모자라면 일손을 놓고 기다렸다. 누구 하나라도 일손을 멈추면 모두가 뻣뻣하게 서 있었다. 급하게 설치다가 넘어진 적도 있어 지게 작대기를 짚고 논바닥을 누볐다.
초등학교 상급생이 되면서 못줄을 잡았다. 모심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보조를 맞출 수가 없어 논두렁에 섰다. 못줄 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게걸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쉴새 없이 살피다가 한순간에 줄을 넘기되 단번에 간격을 맞춰야 했다. 지나치게 빠르면 못줄이 얼굴을 때리고 늦으면 독촉하는 고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푸른 나일론 줄에 꽂힌 빨간 눈이 물에 닿기도 전에 모가 내리꽂히는 바람에 아무 때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세로로 쳐 놓은 장줄이 맞지 않거나 줄 간격이 좁으면 논매기가 어렵고 넓으면 벼수확량이 줄어들었다.
평소 붓글씨를 쓰고 책만 읽던 아버지의 모심기 노래는 최고였다. 축문이나 제문을 짓고 읽는 모습은 여러 번 봐도 들노래는 처음이었다. 어디를 가도 성음이 좋아 매사에 앞장섰다. 묘사를 지낼 때도 수십 명 제군들이 엎드려 아버지의 제문 읽는 소리를 들었다. 어찌나 가락이 좋았던지 외할머니는 큰 사위의 소상小祥 제문 읽는 소리를 생전에 듣고 싶어 했다. 틈만 나면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소리 내 읽던 그 목청이 늦은 봄날 아지랑이가 하늘거리는 들판을 흔들었다.
노랫말도 달랐다. 일상적인 감정이나 질곡의 삶을 나타내는 애절한 가사가 아니었다. 옥죄는 현실의 갑갑함을 벗어나고팠는지 구름과 신선이 자주 등장했다. 마음껏 토해내는 구성진 가락에는 아버지의 이루지 못한 꿈과 현실에 대한 한이 서려 있었다. 좌절된 꿈을 찾는 처절한 소리가 무논에 울려 퍼지면 이웃 논에서 모를 심던 사람들도 잠시 일손을 멈추고 쳐다봤다. 추임새가 절정에 이르면 백로도 날갯짓하며 날아 올랐다.
노동요는 말 그대로 일할 때 부르는 민요다. 노래를 듣고 부르는 동안 육체적 고통과 지루함을 달랜다. 여럿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동작을 맞춰야 하는 모내기는 물론 노 젓기나 그물을 끌어당기는 위험하고 힘든 일에도 청량제 역할을 한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소리꾼이 가사와 음률을 다듬다 보니 부르는 방식도 다 달랐다. 한 사람이 선창하면 여러 사람이 후렴을 부르는 선후창과 선창자와 후창자가 서로 다른 가사를 주고받는 교환창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혼자 부르는 독창도 있다.
들노래는 주로 주고받는 형식을 취한다. 한 소절이 끝나면 누군가가 받아 이어간다. 설사 내용이 연결되지 않고 엉뚱한 가사라고 해도 탓하지 않고 다소 청승스럽거나 해학적이라 해도 차별하지 않는다. 지나온 삶의 궤적이 다르듯 논바닥에 흩어지는 사연들도 다양하다. 타지에서 시집온 아낙네들은 나서 자란 지방의 노래를 자연스럽게 전했다. 가끔은 낯뜨거운 부분도 있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가락에 따라 빠르게 손만 놀렸다.
반세기도 더 지나도 애틋한 사연을 담은 구절 하나가 귓가에 맴돈다. '능청능청 벼리 끝에 무정하다 울 오라배 나도야 죽어 후생後生가면 낭군 먼저 섬길란다〜.' 올케만 홍수에서 구한 오빠에 대한 여동생의 섭섭한 심정을 나타낸 소절의 의미를 잘 몰랐다.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였다. 선인들은 ‘형제는 수족이요 배우자는 의복과 같다.’고 했지만, 나이가 들자 조금씩 이해가 간다.
한을 담은 소리는 드물다. 궁핍함 없는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나올 수 없는 소리다. 목청이 아닌 가슴에서 쏟아지는 피를 토하듯 절규가 느껴지지 않으면 귀명창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영화 <서편제>에서는 딸의 눈을 멀게 해 한을 담은 소리를 만들려고 한다. 지금은 여러 공연장을 돌아도 한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귀한 목청이다.
종심을 앞두고 소리를 배운다. 유년 시절 들었던 모심기 노래와 유사한 <상주 함창>이다. 가사만 봐도 흘러가는 구름을 향해 목청을 돋우던 아버지의 모습이 성큼 다가온다. '저기 가는 저 구름에 어떤 신선 타고 가네〜'라는 가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