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크게 다르랴,
아내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자식 닮은 사람들과 아옹다옹 싸우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매화꽃 피고 지기 어언 십년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기껏 떠났던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아닐까.
아니, 당초 집을 떠난 일이 없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시,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나는 집을 나온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신경림(1936∼2024)

 

시인의 이름을 알기도 전에 ‘가난한 사랑노래’부터 알았다. 중학생 때였는데, ‘왜 모르겠는가’ 묻는 시 앞에서 이 시인은 꼭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이름에 익숙해지기 전에 ‘목계장터’부터 배웠다. 나는 가보지도 않았던 장터와 떠도는 서러움을 만나보지도 못한 시인이 알려주었다. 짧게 왔지만 길게 남는 시였다. 그 시인이 별세하셨다. 이제 배웅하는 마음이 되어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는다.

 

이 작품은 ‘서러운 행복과 애잔한 아름다움’이라고 평가받은, 10년 전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상당히 후반기의 작품인 셈이다. 여기서 시인은 쏜살같이 지나간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신경림 시인은 인생을 ‘먼 데를 향해 걷는 일’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반드시 어디에 도착한다는 욕망 없이, 그저 꾸준히 나아가는 것. 남들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도달할 수 없다고 말려도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 생각해 보면 시인이 존경받는 이유는 이런 자세 자체에 있다. 먼 데 가는 길은 응당 가야 할 길이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 되돌아가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선택할 ‘인간의 길’이라는 말이 시에서 들리는 듯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어른이 계셨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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