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우물 / 박동조

 

 

틈새마다 잡초가 우북하다. 우물 주위로 깨진 시멘트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구석에는 바람이 만든 티끌 더미가 작은 산을 이루었다. 눈을 씻고 봐도 사람의 발길이 닿았다는 흔적이 없다. 한때는 마을사람들의 하나뿐인 젖줄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어안이 막힌다.

우물 안은 온통 초록색이다. 물이끼가 치렁치렁 자란 걸 보면 바닥에는 해감이 더께로 쌓였으리라. 해감 속에는 빨간 실지렁이가 왕국을 차렸겠다. 발걸음 소리에 놀란 개구리 한 마리가 후다닥 이끼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누추한 제 모습을 들킨 게 부끄러워서일까? 물 위로 바르르 물결이 인다.

하릴없이 버려져 인간이 멀리하는 뭇 미물들의 서식처로 전락한 우물의 신세가 가련하다. 이끼와 해감과 실지렁이가 우물을 점령한 지 수십 년, 하늘을 비추는 거울 역할로 근근이 존재를 알리는 우물의 비애를 알 듯하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흥망성쇠興亡盛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우물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한때는 이 우물도 마을 사람들의 하나뿐인 식수원으로 사랑받았다. 깊이가 얕아 이끼가 자라지 않게 자주 청소를 해줘야 하는 불편은 있었지만, 돌에서 솟기 때문인지 물맛이 달았다. 앉아서 바가지로 물을 풀 수 있는 것도 일손이 바쁜 농촌에서는 장점이었다.

끼니때가 닥치면 우물 터는 시장 같았다. 채소를 씻는 사람들의 분주한 손길에 뒤섞여 바가지로 물 푸는 소리,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왁자했다. 마을 사람 누구든 찬거리가 없어 걱정하다가도 우물에만 오면 해결이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농사지은 찬거리를 서로 나누는 건 다반사로 보는 풍경이었다.

우물은 허락된 아낙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고달픈 시집살이를 넋두리하고, 이웃집 아무개 흉도 보았다. 논을 잡히고 도박을 하다가 서 마지기 논을 홀랑 날린 덕평마을 아저씨를 성토한 곳도 우물이었다.

열여섯 나이에 시집온 내 어머니는 매운 시집살이를 가눌 길이 없으면 어두운 밤 홀로 물동이를 이고 나와 우물에 어린 별들을 내려다보며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눈물을 지어도, 소리를 내어 흐느껴도 어른의 눈에 띄지 않아 좋았다고 했다.

이 땅에 산업개발이 한창일 때, 우리 마을에도 예외 없이 도회를 동경하는 바람이 불었다. 혈기 팔팔한 젊은이들이 밀려온 바람 따라 마을을 떠났다. 개발의 자식인 돈의 세력은 우물 인심도 바꿔놓았다. 흔전만전 나누는 찬거리가 돈이 된다는 걸 알아챈 마을 사람들은 농산물을 이고 지고 시오 리 떨어진 오일장으로 내달아 돈으로 바꿔왔다. 농산물을 돈과 바꾸는 걸 부끄럽게 여기던 내 어머니까지 더는 찬거리를 나누지 않았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텔레비전이 등장하자 아낙들이 모여 수다 떠는 모습도 나달이 흐르면서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그때까지도 우물이 수돗물에 자리를 내어주는 시대가 올 거라고는 마을 사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식들이 사는 도회를 다녀온 어른들은 하나같이 천하에 못 먹을 게 수돗물이라고 했다. 소독약 냄새가 난다는 둥, 쇳물 냄새가 난다는 둥 이유도 구구했다. 소독하고 여과한 수돗물이 이끼가 생기는 우물보다 되레 위생적이라는 젊은이의 말을 어른들은 도무지 믿지 않았다. 걸핏하면 이끼가 슬어 실지렁이 무리가 활개를 쳐도, 돌 틈에서 솟아나는 우물물과 강물을 걸러 보내주는 수돗물은 이 마을에서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수돗물은 먹을 물이 못 된다며 수도관 설치를 한사코 반대하던 어른들이 연차를 두고 하나둘 흙으로 돌아갔다. 장년들은 서둘러 상수도 설치에 나섰다. 더러는 지천인 물을 돈 주고 사 먹느냐며 반대했지만, 일정 기간마다 누가 우물을 치느냐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드디어 마을에 상수도가 들어왔다.

편리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도도한 세상의 물결은 마을이 생겨나고부터 식수의 원천이었던 우물을 적막 속에 유폐시켰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을 때의 대안으로 우물을 보존하자는 처음의 의견은 세월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예부터 전해오는 ‘우물을 메우면 재수가 없다’는 말이 무서워 메울 수도 없었다.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우물은 해감이 키를 재는 웅덩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바가지로 물 푸는 소리, 여인네들의 수다 소리, 채소를 씻을 때 나는 찰랑거리는 물소리, 여름밤 목물하다 화들짝 놀라 지르는 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이른 새벽, 첫 번째로 물을 길어다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비손하던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우두커니, 미세하게 이는 물결을 내려다본다. 물에 어린 하늘이 깊다. 빨간 실 같은 게 고물고물 이끼 사이를 떠다닌다. 우물은 ‘개구리와 실지렁이가 바글거리는 웅덩이로 남느니 차라리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돌아가지 못할 번성했던 옛날을 추억하기도 이제는 지쳤다.’고 말하는 것 같다.

시간 속에 팽개쳐진 우물의 운명을 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게 새삼 딱하다. 눈, 귀 어두워지고 뼈마디 앙상한 노인을 마주한 듯 나는 못내 마음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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