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 이정록
작은 나무들은 겨울에 큰단다 큰 나무들이 잠시 숨 돌리는 사이, 발가락으로 상수리도 굴리며 작은 나무들은 한겨울에 자란단다 네 손등이 트는 것도 살집이 넉넉해지고 마음의 곳간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큰애야, 숟가락도 겨울에 큰단다 이제 동생 숟가락들을 바꿔야겠구나 어른들이 겨울 들녘처럼 숨 고르는 사이, 어린 숟가락들은 생고구마나 무를 긁어먹으며 겨울밤 고드름처럼 자란단다
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福자가 쓰인 숟가락 세 개를 방바닥에 내놓으신다 저 숟가락이 겨우내 크면 세 자루의 삽이 될 것이다
쌀밥을 퍼 올리는 숟가락처럼 나무들 위에 눈이 소복하다 한 뼘 두 뼘 커 오를 때마다 나뭇가지에서 흰 눈이 쏟아지고 홍역인 듯 항아리 손님인 듯 작은 새들이 날아간다
하늘이 다시 한 번 털갈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