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는 어디서 왔을까
새도 숲도 없는 이곳에 새소리가 들려왔다면
내 안에서 네 안에서 그도 아니면

신이 있다면 새소리로 왔을까
늪 같은 잠 속에서 사람들을 건져내고
아침이면 문가로 달아나는
반복되는 장난
은빛 깃털만이 신의 화답으로 놓인다면 그도 신이라 부를까

내가 새소리를 듣는다면
잠결에도 아기 이마를 짚는 손과
손을 얹을 때 자라는 조그만 그늘에도

 

내려앉는
포개지는 글자들

(후략)


―남지은(1988∼ )

 

내가 좋아하는 한 시인이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새로 등단한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은 꼭 챙겨 본다고. 그렇다면 그는 남지은 시인의 신간도 읽었겠다 싶다. 시인의 첫 시집은 단 한 번뿐이다. 딱 시인의 수만큼만 존재한다. 그 귀한 것을 읽으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접어놓은 페이지는 ‘호각’이다.

 

새는 눈에 보이지 않고 새소리만 들렸다. 없지만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지 않았지만 왔음이 분명하다. 그때 시인은 ‘신’을 떠올렸다. 보이지 않지만 있으며 오지 않았지만 함께하는 저것은 마치 신과 같구나. 새는 고대에서부터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매개이며 신의 대리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비둘기 같은 도시형 새를 보면서는 신을 떠올리지 못한다. 신이 새를 버린 것인지, 우리가 신을 잊은 것인지 신도, 새도, 그 의미도 퇴색되었던 것이다.

 

신은 새소리에만 머물지 않았다. 잠결에 아기 이마를 짚는 손과 작은 그늘에도 머물렀다. 내 손에도 신이 깃들었을 때가 있겠구나. 신은 모르는 순간들에 찾아오는구나. 이런 깨달음이 생긴다. 갑자기 세상이 좀 사랑스러워진다. 5월의 햇살이 우릴 안아주는 듯 느껴진다. 곧 부처님오신날이다. 안 보여도 좋으니 호각처럼 오신다면 참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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