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 서가書架 / 송태한

 

빗금으로 쏟아지는 투명 햇살

까치발로 춤추는 아침 안개 속

하나둘 눈 뜨는 이야기

돌 틈 풀꽃에 발걸음 멈추고

돌계단 문턱에서 가슴 설렌다

담장 구석 지워진 낙서 한 줄에도

코가 싸하다

이끼 묻은 성대

길켠의 정자나무가 풀어놓는

어깨 들썩이는 소리 마당

감주 내음 흩어진 골목

윷놀이 쥐불놀이 구슬치기 말뚝박기

발길 닿는 곳마다 녹아내리는

순도 높은 시간

양달쪽에 웅크려 곱은 손 비비던

손에 잡힐 듯 몽실몽실한 몇 타래 기억 위

소금물처럼 가라앉은 문양

구불구불 담장 따라 점자로 박힌 악보와 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기억하고

지나는 바람만이 한 장 한 장 넘기며

손끝으로 쓰담쓰담 읽어가는

투박하고 질긴 숨결

키 작은 돌담길엔

어느 빗줄기 눈발도 지울 수 없는

궁궐 성벽보다 두툼하고 질펀한

이야기 책들이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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