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타라 / 김미옥

 

7살 때 떠나왔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린 추억이 어제인 듯 그리움으로 번지는 고향, 지금은 석탄박물관과 드라마 세트장으로 유명해진 경북 문경군 가은읍 왕능리를 찾아갔다.

가은읍에 들어서자 자동차는 본능처럼 은성광업소 사택을 향했다. 지금은 사택이 모두 철거되어 휑뎅그렁한 빈터엔 광업소보다 더 오랜 연륜이 쌓였을 버드나무만 동그마니 남아 그간 보고 들었을 광부들의 삶을 간직한 채 두 손 벌려 반겨주었다.

나는 탄차의 흙먼지와 탄재를 평생 마주하느라 속살까지 까맣게 타버린 도탄교를 건너 가은역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은 카센터가 많아지고 몇몇 집들이 예쁘게 분칠을 한 것과 탄가루가 섞여 거뭇했던 냇물이 맑아져 푸른빛을 띠는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헌데 그만 가은 역사를 보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가슴을 휑하니 스치는가 싶더니 온 몸이 순식간에 굳어져왔다.

가은역은 점촌과 가은을 왔다 갔다 하며 석탄을 수송하는 산업용 철도이기도 했으나 2004년, 완전히 폐선 된 뒤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은 듯 초라한 역사가 애처롭게 눈 안 가득 들어왔기 때문이다.

2006년 12월 4일 등록문화재 제304호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푯말마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였는지 간판과 기둥은 낡아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아슬아슬하고, 유리창은 하나같이 깨어져 파편들만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채 자물쇠로 재갈물린 문짝만 바람에 덜컹거리고 있었다. 담도 무너져 경계마저 사라진 역사 안을 들어서니 무성한 잡초 더미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은 기차 레일이 잊혀져가는 추억을 아쉬워하며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군데군데 억새풀이 무성하고 그동안 밭으로 이용되었는지 몇 안 되는 파뿌리만 아무렇게 나뒹굴고 있는 승강장 위로 역명을 알리는 낡아빠진 입간판이 바짝 마른 허수아비처럼 서 있었다.

이제 대합실에는 아무도 없다.

표를 사는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도,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눈길도…….

 

나는 가은역을 지나 타버린 연탄재 모양을 형상화한 석탄박물관을 향해 걸어갔다. 석탄박물관에 들어서니, 석탄을 캐는 광부들의 출근에서부터 퇴근까지의 작업 모습 등이 사실적이고 현장감 있게 전시되고 있었다.

어린나이에 소년가장이 된 아버지는 조센징이라는 핍박과 서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섯 명이나 되는 어린 동생의 손을 이끌고 현해탄을 넘어 잔뜩 겁먹은 얼굴로 고국 땅을 밟았으리라. 하지만 상처로 가득한 어린 가슴 한 켠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희망이 있었기에 빈 손 대신 목숨을 담보로 이 깊은 산골 탄광촌을 택하였을 것이다.

야외전시장으로 나와 진폐 순직자 위령비를 지나니 폐광 직전까지 활용되었던 은성광업소 갱도를 이용한 갱내사무실-붕락현장체험-재래식굴진막장-갱내식사장면-구호활동 등 각 코너에는 실제 현장을 보는 것처럼 장비·소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름에는 갱내의 기온과 습도가 끝없이 올라가 입은 옷을 벗어 수시로 땀을 짜내어야하고 마스크도 땀에 젖어 결국 벗게 되는데 그러면 순식간에 석탄의 분진이 입과 코로 들어오는 바람에 광부들은 언제나 진폐증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보자, 그렁그렁해진 물기 속으로 갱내 밀랍 인형이 잠시 출렁거리더니 금방 컴컴한 땅 속 막장에서, 흐르는 땀을 쉴 새 없이 훔치며 채탄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시커먼 얼굴로 변해 버렸다.

 

달랑 쇠줄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채 시커먼 굴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아버지,

식구들의 끼니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붕락의 두려움보다 더 무서웠을 아버지,

한나절 굉음소리를 들으며 석탄을 캐내다 검은 도포를 두른 저승사자가 휘젓는 분진을 반찬 삼아 컴컴한 막장에서 양은도시락을 외롭게 드셨을 아버지,

한쪽 폐가 뭉개져 없어진 줄도 모르고 왼쪽 폐에 통증이 없어진 걸 보니 다 나은 것 같다고 환하게 웃으시다 결국 폐암으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모르핀을 맞으셔야했던 아버지,

 

나는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고단한 삶과 성실히 마주했던 아버지의 생에 비추어 볼 때 호사스럽기조차 한 지금의 현실이 뭐가 그렇게 힘겹다고 호들갑을 떨어왔을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작스레 나사 풀린 수도꼭지마냥 회환의 눈물이 철철 쏟아져 내렸다. 그러다 문득 이 곳 ‘가은’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했던 스칼렛 오하라의 고향 ‘타라’와 같은 존재임을 깨달았다.

 

터만 남아있던 사택에 집들이 하나 둘 들어서더니 폐광되었던 광업소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 골목에는 아이들 재잘거림이 소란스럽고 냇가에는 수건을 머리에 두른 아낙들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꺼멓던 빨래를 뽀얗게 헹구어내고 있다.

오늘은 아버지가 갱내로 들어가지 않는 날,

광업소에서 정오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자 5살 계집아이는 광업소 출입문으로 한걸음에 달려가 뒤꿈치를 들고 팔짝팔짝 뛰며 아버지 주위를 뱅글뱅글 돈다. 아버지는 사랑스러운 듯 어린 계집아이를 바위 같은 등에 덥석 업고 광업소 정문을 빠져나와 환하게 웃으며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한다.

 

※‘타라’는 미국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 나오는 남부 조지아주의 한 지명이며 ‘언덕’이란 뜻의 아이리쉬(irish) 방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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