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반야바라밀 / 강태승

 

이십 년 넘게 치매를 앓던 앞집 할머니

위암이 머리로 번져 헛소리 하던 송씨

술독에 빠져 폭력을 휘두르던 김씨도

한 달 사이에 저승으로 간 나무에

아침부터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나무들은 할머니를 진찰하다

곧은 내력은 줄기와 잎으로 챙기고

치매는 살살 더듬어 나이테로

송씨 위암은 둘둘 말아 나뭇잎 끝에

이슬로 매달거나 꽃으로 피우고

김씨 폭력은 벌레가 먹었는지 우멍하다

독사와 구더기 득실득실한 사람도

가을이면 단풍 들게 하는 나무들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의사

한 번도 의료사고가 없는 명의(名醫)

주검을 생토(生土)로 깨끗이 환원하였다

가난하건 부자이건 차별하지 않고

안이비설신의 구별하지 않고

나무들은 제 뼛속의 뼈로 안치(安置)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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