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을 때
나무 그늘 흔들리는 걸 보겠네
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딨나
서둘러 약국을 찾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병을 앓는 것도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을 때
오다가다 안면을 트고 지낸 은목서라도 있어
그 그늘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겠네
마흔몇해 동안 나무 그늘 흔들리는 데 마음 준 적이 없다는 건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얘기처럼 쓸쓸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다 지워졌는데 그 눈빛만은 기억나지
눈빛 하나로 한생을 함께하다 가지
(하략)
―손택수(1970∼ )
낮보다 밤에 더 아픈 법이다. 아기에게도 어른에게도 이 법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밤새 열이 펄펄 끓어도 해 뜨고 정오가 지나면 조금 나아진다. 아마도 외롭고 어두운 밤에,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혼자 실컷 앓아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겨울 지나 봄이 된다고 마음이나 몸까지 겨울 지나 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꽃은 피는데 나는 시드는구나 싶은 마음도 있고, 날이 더워지는데 몸은 그보다 더 불덩이가 되는구나 싶은 사람도 있다. 우리가 밤에 더 아픈 까닭이 결국 아픔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도 우리는 바랄 수밖에 없다. 누군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래서 열이 나는 이마에 물수건이 되어 줄 시를 한 편 준비했다. 아픈데 아파서는 안 되는 한 사람에게 은목서가 힘이 되어 주었다는 이야기. 나무 흔들리는 그늘과 어떤 이의 눈망울을 쥐고 버텼다는 이야기. 이런 것이라도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물수건이 있었다. 그리고 때로 그 작은 물수건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