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송찬호(1959∼)
봄이 오면 생각나는 시인, 송찬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시인은 충북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곳에 심긴 나무처럼 살고 있다. 스스로 초목이 되어 사는 사람이 봄이 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곧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꽃과 나비 같은 것은 상상이 아니다. 그건 보고 듣고 만진 진짜이며 진심이다. 그래서 봄에는 송찬호 시인이 더 좋다.
시인은 꽃이 피어서 어여쁘고 나는 기쁘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 꽃에는 나의 역사와 너희들의 사연이 깃들어 유정하다고 쓴다. 냉이꽃을 사랑한 빈 병의 이야기는 텅 빈 마음으로 사랑을 했던 우리 이야기 같다. 냉이꽃을 사랑한 슬리퍼의 이야기는 세상에 버려진 마음으로 사랑을 했던 우리 이야기 같다. 사랑을 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늑대의 삼나무 숲은 우리가 사는 도시 같다. 냉이꽃이 사랑했을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자연으로 돌아간 시인에게도 돌아갈 그리움이 남아 있다니. 맞다. 돌아가고 돌아가도 뭔가 항상 그리운 것이 시인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리움이 머무는 냉이꽃이 보고 싶은 봄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