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물 / 신서영
佛!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음각한 글자다. 일필휘지로 막힘이 없고, 용맹한 기상마저 풍긴다. 땅속 에너지를 응축했다가 단숨에 펄펄 용솟음치는 마그마처럼 마지막 획이 역동적이다. 이 진중함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으리라. 더군다나 검붉은 몸피에 석록石碌을 입혔으니 섬뜩한 전율마저 인다. 이런 대단한 작품을 주고 떠난 그가 오늘따라 간절히 그립다.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말기 암이었다. 평소에 건강하고 패기가 넘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놀라움이 더 컸다. 매년 건강검진도 했지만 발병한 곳이 특수부위라 일반검사로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그와 함께 황매산 등산도 하고, 남도 맛집 여행도 다녀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지금 이렇게 멀쩡한데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하니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한순간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 세상에 머물 시한부의 삶을 어찌해야 하나 그저 애만 태울 뿐, 그를 위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연말연시라 잠깐 집에 머물다가 다시 입원한다는 그를 만났다. 항암으로 체구는 깡말랐지만,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듯 담담한 표정이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저승도 복잡할 건데 미리 가서 좋은 자리 찜해 놓겠다.”라며 너스레까지 떨지 않는가. 그 말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차마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날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며 홍두깨 같은 이 서각을 내 품에 덥석 안겨주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마지막 선물이라는 말에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얼마 후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이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도 작품은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얼핏 봐도 작가의 내공이 깊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짧은 생을 살다 간 한 인간의 품격과 취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슴이 따듯하고 선이 굵은 그의 성품이 이 작품과 많이 닮았다.
佛!
오직 한 글자라 그런지 바라보기만 해도 숙연해지고, 알 수 없는 충만감으로 채워지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쉽게 열리지 않는 무쇠 자물통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음을 수백 번은 닦고 비워야만 닫히고 갇힌 행간을 말갛게 풀어낼 수 있을까. 외길로 정진해 온 작가의 예술세계는 물론 작품을 소장했던 그의 안목도 돋보인다. 이 감동적인 작품은 무형문화재 26호가 된 동장각장 정민조 작가의 작품이다.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린다. 날씨 탓인지 마음이 뒤숭숭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다. 거실을 서성거리다 빈방에 들어선다. 아늑하다. 두툼한 먹물 방석에 퍼질러 앉아 있으면 그냥 편안하다. 하얀 벽을 등지고 수석 사이에 세워 놓은 이 작품이 눈길을 붙든다. 대웅전의 단청을 보듯 색이 강렬한 탓이기도 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듯 흘러내린 글자의 획이 보면 볼수록 그 깊이에 빠져든다. 마치 이승과 저승, 탄생과 죽음, 그 너머의 모든 것들이 운명적으로 연계된다.
반가사유상을 대면하기 위해 서둘러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가는 길이다. 전시 공간은 특별실로 꾸며졌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란 자막을 지나자 캄캄하다. 그믐밤에 혼자 골목길을 걷는 기분으로 들어간 사유의 방. 별빛만 반짝이듯 어둑한 조명 아래 반가사유상 두 분만 연화대 위에 다소곳이 좌정해 있다. 이른 시각이라 관람객도 없었다. 탑돌이 하듯 불상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고졸한 미소를 띠며 사색에 잠겨있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침묵으로도 수만 마디의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간밤에 이태원 압사 사고로 죽어간 영령들을 위로하는 눈물인지, 내 안에 잠재된 눈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각별한 의미로 다가섰다. 삶이란 마음과 마음이 건네는 선물 같은 거라고, 누군가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고, 이 슬픔은 반드시 지나간다고 반가사유상은 속삭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서각 작품도 불상을 친견하듯 바라보고만 있어도 어수선한 마음이 이내 고요해진다. 진정한 치유의 힘이 이런 것일까.
운명이라는 것은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문제만이 아닌 것 같다. 지금쯤 가지가 휘어지도록 붉은 대추가 매달렸을 나무는 어쩌다 그 험악한 일을 당했을까? 게다가 지인도 아이들 성장하고 한창 삶을 즐길 나이에 갑작스레 생을 마감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생전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그뿐만 아니라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유물에서 운명적인 인연을 떠올렸다고나 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천년의 세월이 선물처럼 내게로 왔으니 말이다. 이 서각 작품도 내가 소장하고 있으나 내 것이 아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막역한 누군가에게 나의 마지막 선물이라며 안겨주고 떠날 것이리라. 그래서 더 아끼고 소중하게 다룬다.
그가 떠나던 날처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날 장례식장을 나서니 늦은 밤이었다. 주차장 담장 틈에서 귀뚜라미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이 애절하게 들려 머뭇거리다 차에 올랐다. 그 녀석이 오늘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운다. 문득 그가 생각나 살며시 문을 열었다. 뚝, 우는 소리가 그친다. 먹먹한 눈시울에 그는 없고, 빗소리만 무성하다. 날이 밝으면 그 녀석을 찾아서 달개비꽃 만발한 풀숲에 놓아 주어야겠다. 어둠조차 맑고 깊다.